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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2.3%로 낮춰도 새 투톱 “위기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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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문재인 정부 경제팀의 새 ‘투톱’이 한국 경제 ‘위기론’을 부정했다. 그러면서 소득주도성장 정책 고수 의지를 재차 밝혔다. 이런 가운데 한국 경제가 가라앉고 있다는 외부 경고음은 점점 커져 간다.

홍남기 부총리후보, 김수현 실장 #소득주도성장 고수 의지 밝혀 #김광두 “제조업 동력 꺼지고 있어” #무디스, 올 성장률도 2.5%로 하향

무디스를 비롯한 주요 경제기관은 한국의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투자 부진 및 제조업 경쟁력 감소를 이유로 “경제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김광두 국민경제자문위원회 부의장)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인적 교체뿐 아니라 기존 경제정책 기조를 과감히 수정해야 한국 경제가 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그러나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11일 청와대에서 출입기자 간담회를 주재하며 “(경제) 위기냐 아니냐 말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역시 지난 9일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기자들과 만나 “내년에도 상당 부분 힘들 수 있겠지만 지금의 경기상황이 경기 침체나 위기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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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제기관들이 한국 경제를 보는 눈은 점점 어두워져 간다. 무디스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5%로 전망했다. 기존 전망치(2.8%)보다 0.3%포인트 낮췄다. 특히 내년 성장률은 이보다도 더 낮은 2.3% 수준에 머물 것으로 무디스는 내다봤다. 이런 예상이 현실화하면 2012년(2.3%)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이런 한국의 성장세는 잠재성장률을 크게 밑돈다는 게 무디스의 예측이다. 잠재성장률은 자본·노동력·자원과 같은 생산요소를 활용해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이룰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한국은행은 현재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2.8∼2.9%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7∼2.8%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미 국책연구기관인 KDI도 지난 6일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2.6%로 내다보며 “내년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을 하회하는 모습”이라고 예상했다. 국제통화기금(IMF)·한국금융연구원도 KDI와 마찬가지로 내년 한국의 성장률이 2.6%에 머물 것으로 예측했다.

통상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건 경기 침체기 신호로 파악된다. 이런 시기가 길어지면 잠재성장률 자체가 낮아지게 된다. 한국 경제의 활력 자체가 떨어지는 것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경기 지표가 한국 경제가 추락 위기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광두 부의장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한국 경제가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투자와 생산능력이 감소하고 있는데 공장 가동률마저 낮아지고 있다는 것은 제조업의 동력이 약해지고 있다는 증거”라며 “위기 논쟁은 한가한 말장난”이라고 꼬집었다.

무디스 “한국 성장률 하향 조정, 기업·건설 투자 감소 탓”

한국 경제 침체의 근원지로 투자 부진이 꼽힌다. 무디스는 소비 증가세를 짓누른 일자리 창출 악화와 함께 기업 및 건설 투자 감소를 성장률 하향 조정 이유로 들었다. “불확실한 대외 환경과 함께 최저임금 인상, 주택시장을 억제하는 거시건전성 조치 등이 투자를 줄이고 있다”는 얘기다. 김현욱 KDI 경제전망실장도 지난 6일 성장률 전망을 발표하며 “설비투자가 지속해서 저조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앞으로 우리 산업경쟁력에 크게 우려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관건은 미래 먹거리와 직결되는 투자를 살리는 것이다. 김광두 부의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결국 세계 시장에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기업의 기를 살려 투자와 혁신이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려면 소득주도성장에 매몰돼 있는 현 정부 정책 기조의 변경이 필수적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조동근 교수는 “단순히 부총리와 정책실장만 교체한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가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며 “가계 소득을 높여 소비를 진작하고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사실상 실패로 확인된 만큼 경제 정책의 방향도 기업·투자 친화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는 부총리에게 맡겨 혁신성장에 속도를 더해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제 투톱’의 불화설은 경제의 불확실성을 가중하고 이는 경기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며 “경제 정책은 부총리가 주도하도록 하면서 그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뒷전에 가려져 있던 혁신성장과 규제개혁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수현 실장은 “정책실장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으로 경제부총리를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존 정책 기조 고수 의지는 분명히 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는 어느 하나 분리할 수 없는 패키지”라며 “그 안에서 속도나 성과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의 방향에 대해서는 수정할 계획은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홍남기 후보자는 “소득주도성장은 앞으로도 해 나가야 할 과제”라며 “일부 문제가 제기되면 조정·보완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설명했다.

하남현·강태화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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