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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월드컵 때마다 쑥쑥 큰 축구용품 유통 싸카스포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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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 달 내내 옷을 팔아 번 돈이 70만원. 1993년이면 고졸 매장사원도 80만원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충남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큰 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하지만 일부러 택한 인생, 거칠 것 없이 뛰어다녔더니 연 매출 120억원을 올리는 중견기업 사장이 됐다. 축구용품전문 유통회사 ㈜싸카스포츠의 오정석(44)사장.

그는 "좋은 직장 때려치우고 옷장사 하려는데 장모님이 '내 딸을 굶기려느냐'며 우셨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싸카스포츠 조직편성도'. 그런데 성(姓)은 '오'씨요, 마지막 글자가 '석'자인 이름이 눈에 많이 띈다. "제수씨들 이름도 있습니다." 다섯 형제 부부들이 사장.이사.대리다.

오 사장은 "월드컵 붐으로 손이 모자라 형제들을 불러모으다 보니 모두 한솥밥 먹는 회사 식구가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월드컵이 복덩어리다. 1994년 세 평짜리 점포가 월드컵 붐을 타고 성장해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축구를 워낙 좋아하는 그는 2002년 부탄.네팔에 축구화 2002켤레를 기부했다. 이듬해 시민 프로구단 대전시티즌 스폰서가 됐고 지난해 북한에 5억원 상당의 축구용품을 기증했다. 그의 성공은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었다.

"밥 굶어가며 오토바이로 물건을 배달했고, 밤새워 공장에서 실밥을 땄던 때를 생각하면 감개무량합니다."

첫 직장은 신무림제지였지만 그는 늘 "서른다섯 살 이전에 사장이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마침 회사 축구동호회 총무를 할 때 알게 된 운동용품 납품업자를 통해 동대문 지하상가에 작은 가게를 냈다.

그러나 유명 상품을 취급하고 싶어도 응해주는 곳이 없었다. 나이키만이 관심을 보였고 그나마 지방에 매장을 내라고 했다. 그는 교수의 꿈을 품고 시간강사를 하던 형 근석(46)씨를 대전사업본부 사장으로 끌어들인 뒤 대전에서 물건을 받아 대전.서울에서 동시에 팔았다. 이 전략이 주효하자 다른 브랜드들도 오 사장을 찾았다.

2000년 15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해마다 두 배로 뛰었다. 급기야 일손이 딸려 국회 영양사로 일하던 아내, 대기업에 다니던 동생들도 영입했다. 형제들은 저마다 특징이 있어 시너지 효과가 만점이라고 오 사장은 자랑했다. 자신이 카리스마 있게 40여 명의 직원을 통솔하면 맏형이 차분하게 직원들을 보살핀다. 또 기아차 출신의 셋째 승석(39)씨가 뚝심 있게 마케팅 활동을 하면 동양화재 출신인 넷째 윤석(36)씨가 세심하게 회사 살림을 꾸려간다는 것. 부인 이대향(44)씨는 "형제 부부들이 함께 일하다 보니 동서들이 주머니 사정을 너무 잘 알게 되는 게 문제"라며 웃었다.

①첫째 오근석(46) 대전사업본부 사장 ②오정석 사장의 처제 이향남(42) 서울직매장 대리 ③둘째 오정석(44) 대표이사 사장 ④정석씨 부인 이대향(44) 감사실장 ⑤셋째 오승석(39) 대구사업본부 사장 [사진=김형수 기자]

정선구 기자<sungu@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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