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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과문화

축제, 자기 초월의 자유로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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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우리의 일상은 고단하고 답답하다. 치열한 경쟁에 육신이 마모되고 사소한 감정들로 마음이 부대낀다. 무엇보다 자기의 존재감을 포착하기 어려운 상황이 삶을 지치게 한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자아를 재단하는 획일주의 풍토에서 모두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잘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들에 대한 콤플렉스 내지 질투심에 사로잡혀 자아는 끊임없이 비틀리고 위축된다. 언젠가 나아지리라는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월드컵 응원은 이러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매혹적인 해방구다. 거기에서 우리는 옹색하고 구차한 일상을 잠시 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소극적인 도피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광장에서 타자를 새롭게 발견한다. 저마다 밀실이나 폐쇄적 통신회로에 갇혀 지내던 낯선 이들이 서슴없이 손뼉을 마주치고 얼싸안는다. 또한 거기에서 우리는 남과 자기를 비교하면서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박지성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서 그의 탁월함에 주눅 들지 않는다. 그가 많은 연봉을 받고 세계적인 명성을 누린다고 해서 시기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그의 잘남은 곧 나의 자랑이요, 그의 승리는 곧 우리의 영광이다. 이렇듯 자아의 테두리가 한없이 확장되는 시공간에서 만나는 타인들은 더 이상 타인이 아니다. 지난 금요일 평가전 직전에 스타디움 앞 공원에서 꼭짓점댄스를 추는 1만여 명의 몸짓에서 과시욕 같은 것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너와 나 사이의 경계가 자연스럽게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그 융합이 국가주의를 매개로 형성되는 단발성 격정(激情)이라는 한계는 있다. 한국인들은 축구가 아니라 국가대표팀을 사랑한다는 따끔한 지적도 들려온다. 이 뜨거운 환호와 갈채를 K-리그, 그리고 더 나아가 다른 종목들에도 나눠 줄 수 있을까. 모처럼 발흥되는 '다이내믹 코리아'의 에너지를 생활의 문화로 정착시켜 가는 길은? 승패에 일희일비하며 함께 가슴 쓸어내리는 간절함, 그 아름다운 일체감으로 사회적 약자와 패자들을 보듬을 수 있을까. 다른 한편으로 지구촌 시민들과 한결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와 감수성을 습득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을 가지고 우리는 한 편의 매혹적인 판타지를 새롭게 준비하고 있다. 생면부지의 군중이 놀라운 질서를 빚어내는 드라마, 악마들이 몸을 붉히면서 착해지는 도깨비 난장 한판이 곧 펼쳐질 것이다. 그 선한 광기의 천지개벽을 맞이해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온갖 탁한 기운을 잠시 거두어 낼 수 있다. 강박과 눈치에 갇혀 있던 일상에서 풀려나, 살아 있음과 함께 있음 그 자체를 한껏 축하할 수 있다. 자기 초월의 황홀함, 그 자유로운 경지에 스며드는 순결한 마음에 온전히 몰입해 보자. 집단적 나르시시즘과 궁색한 선망을 벗고 당당하게 자기를 선언하는 삶의 축제를 위하여.

김찬호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