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길에 온통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건물이 있습니다.
6층 높이 외벽이 비단결처럼 번지르르합니다.
지난여름 내내 초록빛 곱던 벽이 이젠 알록달록 물들었습니다.
바람이라도 얼핏 불면 잎이 손짓합니다.
불그레한 손들이 저마다 오라 가라 손짓하니 마치 벽이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약수동에서 만난 담쟁이덩굴입니다.
산과 산을 잇는 다리는 붉음과 푸름으로 나뉘었습니다.
마치 두 계절이 공존하는 듯합니다.
오가는 길목에 참 많은 담쟁이덩굴이 눈에 띕니다.
평창동에서 만난 나무는 울긋불긋 담쟁이 옷을 입었습니다.
담쟁이는 오르기만 하는 게 아닌가 봅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들도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나무 사이를 비집고 올라왔습니다.
어린 향나무는 잎이 가시마냥 억셉니다.
그 억세디억센 것을 뚫고 올라와 살아냈습니다.
양철 담장을 꼬물꼬물 올라 물든 담쟁이덩굴이 경이롭습니다.
뜨겁디뜨거웠을 한여름 양철 담장에서도 살아낸 붉음이라 더 그렇습니다.
담벼락을 올라 한옥 창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내 곧 문풍지를 뚫을 태세입니다.
10m 높이의 담장을 빼곡히 덮은 데서 잎을 모아봤습니다.
크기, 색, 모양 등이 제각각입니다.
크기는 엄지손톱 크기에서 손바닥보다 큰 것이 있습니다.
색은 푸르거나 누르거나 붉거나 합니다.
모양새도 제각각이지만,
유독 두 가닥 혹은 세 가닥으로 나누어진 게 눈에 띕니다.
어린 담쟁이덩굴의 유년성(幼年性) 잎입니다.
빛이 조금이라도 새어 나가 아래에 있는 잎에 닿을 수 있도록 갈라진 것이라 합니다.
살아내기 위해 잎을 갈라 빛을 서로 나누는 그들의 삶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열매입니다.
담쟁이덩굴이 왜 포도과에 속하는지를 알 듯합니다.
잎 진 자리마다 작은 포도처럼 까맣게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담쟁이는 흡착판을 이용하여 담벼락, 나무, 바위를 오릅니다.
생김새가 앙증맞은 청개구리 발처럼 생겼습니다.
어떤 벽의 담쟁이는 잎이 거의 다 졌습니다.
잎 지고 나니 살아내 온 그들의 삶이 오롯이 보입니다.
남은 잎은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처럼 그렇게 대롱거립니다.
이렇듯 도시의 담벼락엔 가을이 저마다의 이야기로 오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