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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 차에 GPS 달고 가발 쓴 채 접근한 살해범…결국 구속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 이모(47)씨를 살해한 피의자 김모(49)씨가 이씨의 차량에 몰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설치해 위치를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김씨는 범행 당일 가발을 쓰고 이씨에게 접근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 있다” #치밀하게 범행 준비한 정황 다수 #세 자매 “사형해주세요” 청원 올려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강서경찰서는 25일 “김씨가 이씨의 차량 뒤 범퍼 안쪽에 GPS를 달아 동선을 파악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위치정보법 위반 혐의도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씨는 이날 구속됐다. 법원은 김씨가 증거를 없애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강서구 등촌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처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김모 씨가 25일 오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앞서 유가족들은 경찰에 김씨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23일 강서경찰서에 제출한 A4용지 10장 분량의 탄원서에는 “그 사람은 심신미약을 주장하기 위해 정신과 치료를 일부러 받아왔습니다. 입버릇처럼 ‘나는 우울증이 있어 6개월만 살다 나오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유족의 우려와 달리 아직까지 김씨는 심신미약 상태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 강서경찰서는 관계자는 “피의자 김씨가 심신미약을 주장한 사실이 없고, 관련 진단서를 제출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김씨가 심신미약을 주장한다 해도 이를 법원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피해자를 오랜 기간 괴롭혀왔고, 가발을 쓰고 범행 장소에 접근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 온 정황이 드러난 만큼 판단력이 없는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22일 오전 4시45분 범행을 저지른 김씨는 “이혼 과정에서 쌓인 감정 문제 등으로 전 아내를 살해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신고 직후 인근 폐쇄회로(CC)TV를 확보해 김씨의 신원을 특정하고 행방을 쫓기 시작했다. CCTV 영상에서 김씨가 비틀거리는 듯한 모습을 포착한 경찰은 거리에 쓰러진 김씨가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사실을 확인하고, 그를 병원에서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범행 이후 수면제 2~3정과 함께 술을 섭취한 것으로 밝혀졌다.

주차장 살인 사건 피해자의 딸인 세자매가 "아빠를 사형해달라"며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청원글은 사흘 만에 12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주차장 살인 사건 피해자의 딸인 세자매가 "아빠를 사형해달라"며 청와대 게시판에 올린 청원글은 사흘 만에 12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사진 청와대 홈페이지]

김씨와 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세 자매는 이튿날 김씨를 사형시켜달라는 글을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렸다. 이들은 “보호시설 포함 다섯 번 숙소를 옮겼지만 아빠는 온갖 방법으로 찾아내 엄마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며 “결국 사전답사와 치밀하게 준비한 (아빠의) 범행으로 엄마는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갔다”고 밝혔다. 또 “아빠는 치밀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엄마를 죽여도 6개월이면 나올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했다”며 “제2, 제3의 피해자가 없게 아빠를 사형시켜 사회와 영원히 격리하고 심신 미약을 이유로 또 다른 가족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국민 여러분의 많은 동의 부탁한다”고 적었다. 이글은 3일 만에 12만명 넘는 동의를 얻었다.

서혜진 변호사(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는 “이번 사례도 충분히 예측가능했던 범행이었지만, 아직 경찰의 대응은 가정폭력을 예방보다는 사후처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접근금지명령 등의 피해자 보호 대책이 있지만 명령 어겨도 과태료를 내면 그만이라 충분한 강제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25일 오전 10시쯤 구속영장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마스크를 쓴 채 모습을 드러낸 김씨는 “딸들이 엄벌을 촉구하는 청와대 청원을 올렸는데 한마디 해달라” 등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았다. 심문 종료 후 김씨 변호인은 기자들과 만나 “(김씨가) 인정을 다 했느냐”는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범행을 뉘우치고 있느냐”는 물음엔 “많이 뉘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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