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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계에 "새 불씨"던진「광주 미문화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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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광주미문화원을 둘러싼 최근의 사태는 복잡하고 불편한 한미관계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광주항쟁당시의 미국의 역할과 책임에 분노해하는 학생들로부터의 거듭된 문화원공격에 직면한 미국측은 문화원의 잠정폐쇄를 심각하게 검토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는 단순히 광주미문화원의 존폐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두 나라가 불편한 관계의 심화로 이어진다고 봐야한다. 안보·경제적으로 양국의 협력관계가 여전히 긴요한 처지에 비추어 이러한 사태악화는 바람직스럽지 못할뿐 아니라 위험하다는 인식이 고조되고 있다. 광주현지에서도 그런 생각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한 한미양국정부와 광주현지의 입장·분위기를 살펴본다.
정부는 작년부터 과격해지기 시작한 운동권의 주한미대사관이나 미군시설물에 대한 공격, 성조기 소각사태 등에 대해 사안의 심각성을 절실히 느끼면서도 이렇다할 대응책을 강구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최근 미국측이 광주미문화원의 존폐문제를 제기하자 정부대변인 성명을 발표하고 안보·치안관계자 회의를 갖는 등 비로소 발등의 불을 끄듯 해결책을 찾아 부심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순히 정부의 성의부족으로 문제가 악화된 것도 아니고 또 일의 성격상 당장 최선책이 나올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답답해하는 처지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이 광주문화원을 철수하고, 정부가 그런 사태를 사전에 막지 못하는 지경으로 발전하면 우리가 한미관계에서 뿐아니라 국제적 신인도에서 받을 타격이 엄청날 것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일종의 위기관리를 하듯 대응하고 있다.
최병렬 문공장관이 1일 발표한 성명에서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한 것은 정부의 1차적 대응책을 밝힌 것에 불과하지만 그 강도는 어느 때보다 높다. 우선 더 이상의 피습부터 막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바탕위에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자세다.
정부의 딜레머는 미국시설물을 파괴하려는 세력의 논리와 주장을 공권력으로 무조건 누르면 국내정치상 부담이 생기고, 반대로 미국이 광주문화원을 철수하면 우리 정부의 무능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은 물론 한미관계 전반에 엄청난 변조가 초래될 것이라는데 있다.
광주지역의 운동권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미국개입여부에 대한 진상파악이 공격의 주목적이라고 하지만 그 저변에는 미국의 역대 독재정권지지·한반도분단 등에 있어서의 미국의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데까지 연결되어 있고 그같은 논리를 일반 국민에게 확산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전두환씨 사저공격 때를 비롯, 각증 데모에 항다반사로 사용되는 화염병이 광주미문화원에 투척되었다고 해서 정부가 길길이 뛰고 전경으로 겹겹의 방어망을 치면 그것이 바로 공격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운동권은 광주문화원을 철수해도 좋고 그로 인해 정부가 「과잉반응」을 보여도 좋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정부로선 이런 사태가 한미관계 전반에 미칠 파장을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피습장면을 미국국민들이 자주 TV를 통해 보고 듣게되면 반한 감정이 확산되고 그것은 곧 의회에 영향을 미쳐 행정부의 대한정책을 어렵게 만드는데 현재 그 가능성이 점증하고 있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과거 박동선 사건·코리아 게이트사건 때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부당국자들의 견해는 대체로 우려와 탄식이 섞여있다.
한 고위당국자는 2일『국민중에 「자주」·「자립」이라는 용어를 싫어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안보나 경제면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무시해서는 곤란한 것 아니냐』고 말한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에서의 미국의 개입여부 등 모든 문제에 대해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좋으나 그 방법은 평화적이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반대로 우리 재외 국민보호상에도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걱정한다. 아무리 좋은 대의명분이 있다 하더라도 폭력을 쓰게되면 정당화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 정도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느냐』는 여론이 보편화되면 미국은 물론 외국으로부터 노태우 정부의 능력이 의심받게 된다.
정부는 이처럼 문제의 심각성은 인식하면서도 대응책의 폭이 좁아 고민하고 있다.
그렇지만 화염병을 투척하는 등의 폭력행위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시점에 달했으므로 이 부분에 대해선 강력 대처를 다짐하고있다.
그런데도 문화원의 이전이나 폐쇄문제가 제기되면 미측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입장인듯 하다.
그러나 이 문제의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서는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입장만 고집하지 말고 상호 이해하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정부 내에도 있다.
즉 광주특위 등 정치권에서는 「글라이스틴」전대사가 서면답변은 하겠다고 한만큼 빨리 이것만이라도 이루어지도록 조치를 취하고, 정부도 문제가 곪아터지기 전에 대화노력을 강화해야한다는 것이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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