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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컵 손에 쥔 켑카, 세계 1위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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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더 CJ컵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브룩스 켑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본따 출전 선수 78명의 이름을 모두 한글로 담았다. 우승자 켑카의 이름은 금색으로 새겼다. [연합뉴스]

더 CJ컵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브룩스 켑카.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본따 출전 선수 78명의 이름을 모두 한글로 담았다. 우승자 켑카의 이름은 금색으로 새겼다. [연합뉴스]

21일 제주도 클럽 나인브릿지 골프장.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더 CJ컵 최종 라운드에서 아슬아슬한 우승 경쟁을 벌이던 브룩스 켑카(28·미국)가 16번 홀(파4) 그린 옆 러프에서 세 번째 샷을 했다. 홀까지는 약 20m 거리에서 켑카가 시도한 칩샷은 그린 위를 데굴데굴 구르더니 핀을 맞고 그대로 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오늘의 샷(shot of the day)’으로 선정된 그림 같은 칩샷 버디 한방으로 켑카는 2위 그룹의 추격을 따돌리고 우승을 확정지었다.

합계 21언더파로 상금 19억 챙겨 #312야드 장타, 정교한 퍼트 승부수

4타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시작한 켑카는 마지막 날 8타를 줄인 끝에 합계 21언더파로 2018~19시즌 첫 우승을 차지했다. 개리 우드랜드(미국·17언더파)를 4타 차로 제쳤다. 2타차로 앞섰던 18번 홀에선 3m 거리의 이글 퍼트까지 성공시켜 우승을 자축했다. PGA 투어 메이저 대회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을 제외하곤 가장 상금이 많은 이 대회에서 우승 상금 171만 달러(약 19억3000만원)를 받은 그는 시즌 상금 1위로 올라섰다. 또 지난달 말 2017~18시즌 PGA 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데 이어 생애 처음으로 세계 골프랭킹 1위로 올라서는 겹경사를 맞았다.

켑카는 “16번 홀 칩샷을 하기 전에 캐디가 ‘이건 꼭 넣어야 해’라고 말해줬다. 그 버디로 우승을 예감했다”면서 “어부지리가 아닌 내 힘으로 세계 1위에 올라서 더욱 기쁘다. 드디어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로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CJ컵 우승 트로피를 받았다.

켑카는 지난해 챔피언 저스틴 토마스(25·미국)의 권유로 이번 대회에 왔다고 털어놨다. 켑카는 “토마스가 이 대회 운영과 코스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아 망설임 없이 제주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국을 처음 찾은 켑카는 방한 이틀째인 15일엔 ‘대어’를 낚는 행운도 안았다. 평소 낚시를 좋아하는 그는 제주 앞바다에서 51㎝ 크기의 황돔을 낚았다. 켑카는 황돔을 손에 들고는 “특별히 미신을 믿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황돔이 내게 좋은 운을 가져다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회 개막을 앞두고 서귀포 앞바다에서 51㎝ 짜리 황돔을 낚은 켑카. [사진 CJ그룹]

대회 개막을 앞두고 서귀포 앞바다에서 51㎝ 짜리 황돔을 낚은 켑카. [사진 CJ그룹]

그의 말처럼 켑카에겐 운도 따랐다. 지난해 변화무쌍했던 제주 특유의 강풍은 올해 대회에선 첫날을 제외하곤 잠잠했다. 제주 바람이 멎은 2라운드부터 켑카는 펄펄 날았다. 과감한 드라이브샷으로 필요한 순간마다 300야드 이상 장타를 펑펑 때려냈다. 파 4홀에서 원온에 성공하는가 하면 2라운드 18번 홀(파5·568야드)에선 캐리(런을 제외한 날아간 거리)로만 312야드를 기록했다. 그가 마법 같은 드라이브샷을 펑펑 터뜨리자 갤러리 사이에선 ‘미사일 같다’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2017~18시즌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 313야드로 비거리 부문 전체 8위에 올랐다. 근육질 몸에 굵은 팔뚝이 돋보이는 켑카는 “100%의 힘으로 샷을 하는 건 아니다. 굳이 수치를 따지자면 85% 정도의 힘으로 거리를 조절하면서 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에선 퍼트 실력도 돋보였다. 켑카는 “퍼트가 정말 잘 됐다. 거리가 멀어도 넣어야 할 때 대부분 다 성공했다. 가장 만족스러웠던 부분”이라고 말했다.

경기 내내 그는 무덤덤한 표정을 지으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곤 생각에 잠긴 채 필드를 걷다가 다른 선수의 퍼트를 기다릴 땐 스코어카드를 보면서 전략을 가다듬었다. 1·2라운드에서 켑카와  함께 경기했던 임성재(20)는 “버디를 하든, 보기를 하든 언제나 표정이 똑같더라. 그의 멘털을 정말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켑카는 “난 성격이 단순한 편이다. 누군가는 ‘원시인 골프’라고도 한다. 그저 최저타수를 기록하기 위해 차근차근 플레이할 뿐”이라면서 “집중하다 보니 표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우승으로 세계 1위에 오른 켑카에겐 제주가 ‘약속의 땅’이 됐다. 그는 “코스가 재미있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면서도 “낚시를 하면서 종종 대어를 낚은 적이 있다. 그래서 꼭 이번에 황돔을 잡았다고 해서 행운이 생긴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토마스에 이어 올해는 켑카가 우승하면서 더 CJ컵은 PGA 투어 전 시즌 올해의 선수가 우승하는 새로운 전통(?)이 생겼다. 켑카는 “지금부터는 세계 1위의 위치에서 도전하게 됐다. 메이저 대회 우승을 위해 더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회에 출전한 한국 선수 중에선 김시우(23)가 7언더파 공동 23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다.

제주=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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