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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시험지 유출 의혹’ 숙명여고, 교직원·자녀 함께 못 다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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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시험지 유출 의혹이 제기됐던 숙명여고가 교직원 자녀의 입학을 금지하는 상피제를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시험지 유출 의혹이 제기됐던 숙명여고가 교직원 자녀의 입학을 금지하는 상피제를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전직 교무부장 A씨가 쌍둥이 자매에게 시험 문제를 유출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숙명여고가 내년부터 교직원과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것을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상피제(相避制)를 도입한다. 유출 의혹에 대한 학교의 후속조치다. 숙명여고는 22일 학교 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시험지 보안 대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학업성적 관리 규정도 개정하기로 했다.

내년부터 전국 고교 상피제 도입 #의무화 대상 아닌 사립으로 이례적

이혜숙 숙명여고 교장은 18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내년부터 교직원 자녀의 학교 입학을 금지하기로 했다"며 "교직원에게는 내부적으로 통보가 완료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 교장은 "가정통신문이나 학교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발표하는 것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현직 교사의 딸로 현재 학교에 재학 중인 일부 소수 학생에 대해서는 학업 안정성 등을 고려해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기로 했다.

학교의 상피제 도입에 대해 학부모들은 대체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한 학부모는 "상피제를 도입하겠다는 내부 결정을 대외적으로 명확히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립고인 숙명여고의 상피제 도입은 이례적이란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8월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며 내년 3월부터 "전국 고교에 상피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고교 가운데 23.7%인 560개교에 부모와 자녀가 같이 다닌다. 하지만 현재 법률상 사립고는 숙명여고처럼 학교가 먼저 나서지 않는 이상 상피제를 강제할 근거가 없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숙명여고 사태로 교육 현장에선 학교 내신 관리에 대한 학부모들의 불신이 팽배한 상태"라며 "상피제 도입 없이 신뢰 회복은 어렵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강태중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상피제를 도입하는 것의 불가피성과 별개로 이 제도가 교육적으로 올바른지는 따져볼 문제"라며 "내신과 수능이란 경쟁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 교사와 아이를 불신하는 상피제 도입을 해법으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숙명여고 학부모와 졸업생으로 구성된 '숙명여고 정상화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회원들은 이날 수사 과정에서 시험 지문 유출 정황이 드러난 A씨와 쌍둥이 자매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숙명여고는 시험 문제 유출 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쌍둥이 자매에 대해선 경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본 뒤 입장을 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교장은 "신속한 수사를 통해 이번 사태의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지난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회원들이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의혹과 관련해 전국 고등학교에 대한 내신 비리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회원들이 숙명여고 시험문제 유출 의혹과 관련해 전국 고등학교에 대한 내신 비리 전수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숙명여고 문제 유출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수서경찰서는 A씨와 쌍둥이 자매를 업무방해 혐의에 따른 피의자로 입건했다. 하지만 자매 중 한 학생이 조사 중 호흡곤란 등을 호소하며 입원해 추가 조사 일정은 잡지 못했다.

숙명여고는 다음주 운영위원회에서 ▶자녀가 학교에 재학 중인 교직원의 시험과 관련한 모든 평가 업무 배제 ▶무인경비시스템과 CCTV가 설치된 시험지 평가관리실 신설 ▶시험지 열람 및 파지 업무는 평가업무담당 교사 입회하에 진행 등의 내용이 포함된 학업성적 관리 규정도 개정키로 했다.

숙명여고 관계자는 "상피제 도입과 별도로 서울시교육청의 개정 지시에 따라 진행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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