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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Mr. 밀리터리] 한반도 생명줄과 평화 지키는 거점, 제주 해군기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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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제주기지와 동북아 해양 각축전

20세기 초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지은 러일전쟁(1904~1905)은 쓰시마해전 때문에 사실상 결말이 났다. 러일전쟁은 러시아의 동진에 위협을 느낀 일본이 한반도와 만주를 놓고 벌인 한판 승부였다. 당시 러시아는 뤼순항을 일본에 점령당하고 만주에서도 밀리자 발트함대를 급히 파견했다. 하지만 막강한 발트함대는 영국의 방해로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오며 지친 데다 전투 의지 부족으로 일본에 참패했다. 그때 도고 헤이야치로 제독이 지휘한 일본 연합함대는 진해에서 출전하며 이순신 장군에게 승리를 기도했다고 한다. 만약 도고 제독이 쓰시마해전에서 졌더라면 오늘날 일본은 없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일본은 해상 통제권을 러시아에 뺏겨 바다를 통해 만주로 병력·군수물자를 보낼 수 없고, 그 결과는 패전이다. 해군력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 역사 교훈이다. 러일전쟁에서 이긴 일본은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조약으로 한반도를 장악했다.

러일전쟁 승패는 쓰시마해전 #동북아 분쟁 100년 만에 회귀 #해상교통로 전초기지 핵심 #매달 1~2회 이어도 경비 #시민단체·노조가 반대시위 #평화를 지켜야 ‘평화의 섬’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00년이 더 지난 지금 역사는 구조를 바꿔 반복하고 있다. 해상로는 러일전쟁 당시의 동·서해에서 현재 제주도 남쪽에서 이어도를 지나 대만에 이르는 해역으로 확대됐다. 세력도 재편됐다. 중국 대 일본에서 중국·러시아 대 미국·일본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북한은 핵무장으로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은 중국에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체제 속에 있다. 중국이 사드 사태처럼 패권·횡포 추구가 아니라 주변과 조화롭게 산다는 원칙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이 경쟁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중국은 해상로 장악을 위해 랴오닝함 등 항공모함을 건조했으며, 미니 이지스함인 뤄양급(Type-052D) 등 구축함을 속속 전력화하고 있다. 중국은 또 한국과 일본, 오키나와·괌, 미 항모까지 타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해안에 집중 배치했다. 물론 중국 해군은 현재로선 미국의 상대가 안 된다. 여기에 일본까지 가세하면 중국 해군은 더 열세다. 중국의 패권 추구와 팽창에 대응해 아시아 지역의 군사비 지출도 획기적으로 늘고 있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중국의 군사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2008년 5.8%에서 2017년 13%로 급증했다. 이에 맞춰 인도는 2016년에 비해 지난해 5.5%가 늘었다.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는 지난 10년간 2배 이상, 캄보디아도 4배가 증가했다.

문제는 중국이 목표로 하는 해상 영향권에는 한국·일본에서 대만을 거쳐 동남아·인도·아프리카·중동·유럽으로 가는 해상 무역로가 포함돼 있다. 우리가 수입하는 원유 99.8%가 이 해역을 통과한다. 일본도 비슷한 처지다. 그런데 남북으로 된 지도를 뒤집어 보면 이 해상로의 전초기지가 제주기지다. 중국 닝보(寧波)기지-제주기지-일본 사세보기지가 둥근 호를 그리며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데 제주기지가 그 중앙에 위치한다. 특히 해저자원이 풍부한 수중 암초 이어도와는 제주기지가 가장 가깝다. 제주기지에서 이어도까진 176㎞이지만 중국 동해함대가 위치한 닝보에선 398㎞, 일본 사세보에선 450㎞다.

우리 종합 해양과학기지가 세워진 이어도는 겉으로는 바다로 보인다. 그러나 해면에서 불과 4.6m만 물속으로 내려가면 여의도 면적 1/4 넓이의 거대한 암반이 있다. 그게 이어도다. 우리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있는 이어도 인근 해역에는 원유 100~1000억 배럴과 천연가스 72억t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군은 이어도의 전략적 가치 등을 고려해 제주기지에 7기동전단을 배치했다. 해군에 따르면 이 기동전단엔 세종대왕함(9600t) 등 이지스함 3척과 충무공이순신함급(만재 5500t) 구축함 4척, 잠수함사령부의 214급 잠수함(1800t) 2척 등이 소속돼 있다. 또 제주도에 해병대를 여단급으로 증강했다. 해군은 매달 1~2번씩 함정을 이어도로 보내 경비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어도가 대륙의 연장이라고 주장하며 이어도 해양기지는 불법이라고 우긴다.

제주기지의 기능은 이어도 수호뿐만이 아니다. 유사시 북한 해군 함정을 동서로 완벽하게 분리한다. 동·서해로 나누어진 북한 해군이 제주도 남쪽으로 돌아 서로 돕지 못하게 견제하는 것이다. 반면 제주기지에 있는 우리 함정들은 필요하면 동·서해를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다. 제주기지를 활용해 적은 분리 차단하는 대신, 우리는 동·서해 함대(1·2함대)를 효과적으로 지원해 협동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북한이 부산이나 진해 등에 있는 해군기지를 기뢰로 봉쇄할 경우엔 함정들을 제주기지에 이동 배치할 수도 있다. 제주기지의 이런 전략적인 이점에 따라 북한은 비판적이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의 일부는 여전히 제주기지에 반대하고 있다. 평화의 섬인 제주도에 웬 군사기지냐는 것이다. 지난주 관함식 때도 시위대는 행사를 보기 위해 온 참관객들의 버스가 제주기지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시위대 일원으로 방송 인터뷰에 나선 이들은 의외 인물들이었다. 비판 인터뷰의 주인공은 제주 주민들이 아니라 대부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간부거나 민주노총 산하 노조 간부들이었다. 제주기지 건설 과정에서 갈등을 빚은 강정마을 주민들이라면 모르겠지만, 외지인들이 시위대의 핵심이라는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 외지인들이 강정마을 주민들을 부추겨 제주 해군기지에 반대하도록 했다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정부도 강정마을 주민과 갈등을 해소하고 제주기지 주변을 발전시키기 위해 2012년 국비 5787억원을 포함해 1조771억원을 투입하기로 했었다. 이 계획에 따라 제주기지에 15만t급 크루즈선 2척을 세울 수 있는 계류시설과 크루즈 터미널 등을 건설하는 등 8개 사업을 완료했다. 하지만 이후 사업 진행이 더디다. 그런 만큼  “이제는 과거의 고통·갈등·분열의 상처를 씻고 미래로 가야 할 때”라며 “하와이를 보라. 세계 최대의 해군기지가 있지만, 평화의 섬으로 번영을 누리고 있다”는 문 대통령의 뜻에 맞게 각종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기 바란다. 과거 한국사에서 해군력이 무너졌을 때는 어김없이 외침을 받았고 나라가 해체됐다. 그런 면에서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 되기 이전에 평화를 지키는 거점이어야 한다. 그랬을 때 제주도가 하와이처럼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지 않을까.

김민석 군사안보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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