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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괘씸죄는 죄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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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16일 ‘알권리 교란 허위조작 정보 엄정 대처’ 방안을 발표하는 걸 보며 인용하고 싶은 말이다. 좀 길다.

“어떤 표현에서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내는 건 매우 어렵고, 객관적인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는 것 역시 어려우며, 현재는 거짓인 것으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그 판단이 뒤바뀌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 나아가 객관적으로 명백한 허위사실의 표현임이 인정되는 때에도 그와 같은 표현이 언제나 타인의 명예·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거나 공중도덕·사회윤리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으며….”

“‘가장 참여적 시장’ ‘표현 촉진적 매체’로서 인터넷 통신의 발달에 따라 정보 수신자는 매우 다양한 경로를 통해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특정한 표현에 대한 반론 내지 반박도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 허위사실의 표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의 올바른 정보 획득이 침해된다거나 범죄의 선동, 국가 질서의 교란 등이 발생할 구체적인 위험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어떤 표현이나 정보의 가치 유무, 해악성 유무가 국가에 의해 일차적으로 재단돼선 안 되며 이는 시민사회의 자기교정 기능과 사상과 의견의 경쟁 메커니즘에 맡겨져야 한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범적이랄 수 있는 판단이다. 바로 2010년 12월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이다. 당시 헌재는 “경찰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 진압 과정에서 시위 여성을 강간했다”(허위다), “외환보유고가 고갈돼 외화예산 환전업무가 중단됐다”(역시 허위다)는 등의 글을 올린 이들에게 적용한 벌칙 조항(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이 위헌이라고 봤다. 위의 인용문은 특히 이강국·이공현·조대현·김종대·송두환 재판관 5인의 보충의견이었다.

이들 중 송두환·조대현 재판관은 박상기 장관과 마찬가지로 현 정권과 가까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당시 변호인이었던 박재승·김갑배 변호사도 유사하다. 진보적이라는 이들로선 당연한 목소리였을 게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도 당시 이 결정을 ‘올해 최고의 판결’로 꼽았다.

그로부터 8년이 흘렀다. ‘가짜뉴스’가 판친다. 개탄할 일이고 개선할 일이다. 하지만 그때도 그러했듯 지금도 국가가, 엄밀하게 특정 정권이 단죄하겠다고 나서는 게 온당한 일인지 의문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간 누구보다 표현의 자유를 외쳤던 이들이 아닌가. 당시 진보 진영의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괘씸한 게 죄는 아니다.” 맞다. 괘씸한 건 그때도, 지금도 죄가 아니다.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