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 선 선수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다. 육상 100m 출발선으로 다가가 자세를 취했다. 손이 불편해 손가락을 펴는 대신 주먹으로 땅을 짚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다리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2위를 거의 10m 차로 따돌리고 테이프를 끊었다. 지난 10일 전민재(41) 선수가 2018 인도네시아 장애인 아시아경기대회 여자 100m(T36ㆍ뇌병변장애)에서 금메달을 거머쥐는 순간이었다.
전 선수는 장애인 스포츠 스타다. 이번 아시안게임까지 그가 국제대회에서 따낸 금메달이 다섯 개, 전체 메달은 13개다. 어릴 적 그는 세상을 마주하기 무서워했다. 다섯 살 때 뇌염으로 장애를 얻은 뒤 10여 년을 방에 틀어박혀 보냈다. 열아홉에 겨우 용기를 내 특수학교에 갔고, 스물여섯에 체육교사가 달리기 소질을 발견했다. 발톱이 빠질 정도로 연습을 거듭했다. 마침내 146㎝ 작은 키를 극복하고 2012년 런던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100m와 200m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세상이 두려워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다”던 아이는 시상대에 올라 세상을 향해 활짝 웃었다. ‘미소 천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전 선수 같은 장애인 스포츠 스타는 스스로만 껍데기를 깨고 밖으로 나오는 게 아니다. 몸이 불편해서, 또 타인의 시선이 불편해서 집 안에 머물던 장애인들에게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북돋워 준다. 움직임이 적은 까닭에 비만율과 만성질환율이 높은 장애인들은 선수들을 보고 스스로 건강을 챙기러 나선다. 장애인 스포츠 스타가 많이 나와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국내에서 장애인 스포츠 스타가 자리 잡기는 쉽지 않다. 첫 패럴림픽 수영 메달리스트(런던 패럴림픽 자유형 200m 동메달)인 조원상(26) 선수는 지금 수원시장애인체육회 직장운동부 소속이다. 실업팀이라지만 유도 선수와 조 선수 단 둘뿐이다.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에게 붙는 기업 후원 같은 것은 없다. 조 선수의 어머니는 “지원해 주는 수원시에 감사할 따름”이라고 했다.
선수가 아닌 장애인들이 건강을 챙기려 생활체육시설을 이용하기는 더 수월치 않다. 장애인 샤워실을 갖춘 스포츠 시설은 태부족이다. 장애인 체육 지도자는 만나기 어렵다. 보수가 최저임금 수준이어서 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 시선이 문제다. 시설을 이용하려는 장애인들에게 “손님 없는 시간대에 와 달라”고 요구하는 게 아직도 다반사라고 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사라져야 할 편견이다. 우리 장애인 선수들이 메달을 몇 개 딸 때쯤에나 이런 인식이 사그라들까.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