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라이프 트렌드] '뉴트로' 넘어 '힙 트로' 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라이프스타일 복고 열풍 

로고를 하나의 패턴처럼 사용한 아르마니 익스체인지의 올가을 컬 렉션.

로고를 하나의 패턴처럼 사용한 아르마니 익스체인지의 올가을 컬 렉션.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는 과거의 사실을 교훈 삼아 새로운 것을 창조해낼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유행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과거에 유행했던 디자인이 수십 년 뒤 다시 유행한다. 몇 년 전부터 복고 열풍이 거세다. 요즘 인기를 끄는 복고 트렌드는 과거 유행하던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과는 다르다. 현대적인 기술과 트렌디한 감각을 덧입혀 ‘힙’(Hip, 개성이 강하고 멋있는 것을 의미)한 스타일로 다시 탄생시킨다.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이다. 1990년대를 주름 잡았던 유행이 2018년을 점령했다. 그간 복고 열풍을 타고 80~90년대를 재해석한 ‘뉴트로’(New-tro, 새로움(New)과 복고풍(Retro)을 합친 신조어)가 트렌드를 주도해왔다. 큼지막한 브랜드 로고가 박힌 ‘빅 로고 패션’, 알록달록한 색상이 배색된 ‘컬러블록 점퍼’, 허리 라인을 넘어 배꼽까지 끌어올리는 ‘하이웨이스트 청바지’ 등이 대표적이다.

올가을 패션 스타일 주도

1999년 제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올의 ‘새들 백’.

1999년 제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올의 ‘새들 백’.

올가을 복고 패션은 한층 ‘힙’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뉴트로에서 한 단계 진화해 복고를 최신 유행으로 즐기는 이른바 ‘힙트로’(Hip-tro, ‘힙’과 ‘레트로’를 조합한 신조어)가 등장했다.

뉴트로가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취향이라면 힙트로는 촌스러움이 가장 ‘힙’한 스타일로 여겨지는 현상을 빗댄 표현인 셈이다. 오리지널 상품의 클래식한 디자인이나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스테디셀러’를 요즘 감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 봇물을 이룬다. 복고 패션을 대표하는 빅 로고는 화려하면서도 전체적인 스타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세련된 패턴으로 변화했고, 하이웨이스트·농구화 등 복고 아이템에는 현대적인 멋이 더해졌다.

1999년 제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올의 ‘새들 백’.

1999년 제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올의 ‘새들 백’.

패션업계는 가방·의류·신발 등에서 ‘힙트로’ 제품을 대거 선보인다. 디올의 ‘새들 백’이 대표적이다. 99년 당시 디올의 디자이너였던 존 갈리아노는 승마에서 영감을 받아 말안장 모양의 ‘D’ 형태로 디자인한 가방을 만들었다. 이번에 새롭게 출시한 새들 백은 에스닉한 끈을 사용해 움직임에 방해 받지 않고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디올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마리아 그라치아 치우리는 “세월의 흐름에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되살리고 싶었다”며 “새들 백은 다채로운 컬러와 자수, 비즈 프린지로 장식해 바쁜 일상에 어울리는 액세서리로 재탄생했다”고 전했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96년과 97년 처음 출시한 청바지를 재해석해 디자인한 복고풍 데님 컬렉션을 선보였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96년과 97년 처음 출시한 청바지를 재해석해 디자인한 복고풍 데님 컬렉션을 선보였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데님 컬렉션 ‘블라콘스트’를 통해 다양한 복고풍 데님 제품을 내놓았다. 96년과 97년 처음 출시한 청바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으로 이름도 ‘1996’ ‘1997’ 청바지로 지었다.

90년대 농구화를 떠올리게 하는 크리스찬 루부탱의 ‘오렐리옹’ 스니커즈.

90년대 농구화를 떠올리게 하는 크리스찬 루부탱의 ‘오렐리옹’ 스니커즈.

크리스찬 루부탱은 농구 인기가 전성기였던 90년대의 농구화를 빼닮은 남성 스니커즈 ‘오렐리옹’을 최근 출시했다. 리복은 기존 러닝화 모델에 90년대 스타일과 현대적 감성을 더한 ‘아즈트렉’을, 휠라는 99년에 인기를 끌었던 보비어소러스 러닝화를 새롭게 재해석해 일명 ‘어글리 슈즈’(못생긴 운동화)라는 타이틀의 ‘보비어소러스 99’를 내놓았다.

알렉산더 왕은 외투·팬츠 등에 로고를 고급스럽게 적용했다.

알렉산더 왕은 외투·팬츠 등에 로고를 고급스럽게 적용했다.

‘나 명품이야’라고 대놓고 로고를 드러내는 빅 로고 패션은 더 화려하고 큼지막해졌다. 해외 명품 브랜드는 올가을 빅 로고 제품을 앞다퉈 출시했다. 특히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과 계절별 콘셉트를 바탕으로 기본 로고를 다양한 서체와 색상, 새로운 형태로 색다르게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알렉산더 왕과 엠포리오 아르마니는 제품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빅 로고를 적용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올가을 컬렉션에서 의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로고를 크게 넣은 오버사이즈 외투를 선보였다. 심홍용 신세계인터내셔날 해외 브랜드 마케팅 담당자는 “패션계 복고 열풍이 올해 한층 새로워지면서 과거에 유행했던 로고 패션이나 디자인이 현대적으로 변주되는 양상을 보인다”며 “트렌드에 민감하며 뚜렷한 개성을 중시하는 2030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해 명품 브랜드는 복고 패션도 최신 유행을 접목한 형태로 선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리빙업계 전반으로 확산 

로얄코펜하겐이 1779년 제품에 모던함을 더해 새롭게 선보인 ‘블롬스트’

로얄코펜하겐이 1779년 제품에 모던함을 더해 새롭게 선보인 ‘블롬스트’

‘뉴트로’를 넘어 ‘힙트로’ 트렌드가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끄는 가운데 새로운 복고 열풍은 패션뿐 아니라 식음료나 식기류,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과거 인기 제품의 포장 패키지를 재현한 식음료 제품과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단종됐던 인기 제품이 재출시되고 있다. 80~90년대 음료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주던 회사 로고가 촌스럽게 새겨진 유리컵은 ‘빈티지 컵’ ‘레트로 컵’으로 불리며 갖고 싶은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빈티지 컵이 인기를 끌자 빙그레는 90년대 초반에 사용하던 로고를 넣은 유리컵을 제작해 사은품으로 증정하고, 오리온은 패션 편집숍 비이커와 함께 초코파이 그림이 새겨진 빈티지 컵을 만들기도 했다.

로얄코펜하겐이 1779년 제품에 모던함을 더해 새롭게 선보인 ‘블롬스트’

로얄코펜하겐이 1779년 제품에 모던함을 더해 새롭게 선보인 ‘블롬스트’

리빙업계도 ‘힙트로’ 열풍에 가세했다. 조명 브랜드 루이스 폴센은 1927년 모델의 디자인과 따뜻한 호박색 유리를 사용한 복고 감성의 조명을 요즘 트렌드에 맞게 응용해 제작했다. 페나키보드는 옛 타자기를 닮은 복고풍 디자인의 무선 키보드를 선보였다. 덴마크 도자기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은 1779년 선보였던 ‘블루 플라워’의 오리지널 패턴에 여백의 미와 모던함을 더한 새로운 컬렉션 ‘블롬스트’를 출시했다. 이서용 한국로얄코펜하겐 부장은 “오랜 전통을 지닌 제품에 새로움을 더해 감각적이고 쓰임새 있는 신제품을 선보이게 됐다”며 “익숙한 디자인의 변형을 통해 기존 제품을 가지고 있던 소비자는 ‘반가움’을, 신제품을 접한 소비자는 ‘새로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복고 트렌드의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복고는 4050 중·장년층에게는 추억을 자극하는 향수로, 이를 경험하지 못한 2030세대에게는 신선하고 독특한 감성을 선사한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정서적 안정을 찾는 욕구와 각박한 현실에서 벗어나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맞물리면서 복고는 이제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트렌드가 됐다. 또 과거를 현재로 불러들이는 복고 감성이 디지털과 융합되면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피로감을 느낀 현대인에게 안정감과 위안을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알렉산더 왕은 외투·팬츠 등에 로고를 고급스럽게 적용했다.

알렉산더 왕은 외투·팬츠 등에 로고를 고급스럽게 적용했다.

박성희 한국트렌드연구소 연구원은 “젊은 층에게 복고는 단순히 옛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전통이자 새롭고 재미있는 하나의 문화 콘텐트로 자리 잡았다”며 “복고 중심의 소비 트렌드는 앞으로도 전 산업에서 가속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글=한진 기자 jinnylamp@joongang.co.kr
사진=각 업체 제공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