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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반대도 한·미 FTA 담판 카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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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성공적인 FTA를 기대하려면 경제적 이득의 관점이 아니라 '협상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단순히 관세나 비관세의 철폐를 두고 경제적 손익을 따질 게 아니라 최종 합의문을 이끌어 내는 과정을 통해, 즉 협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제적 결과가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FTA는 협상(예비협상)에서 시작해 협상(본협상)을 통해 협상(후속협상)으로 끝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FTA가 외부협상과 내부협상의 이중적 구조를 가진다는 것이다. 외부협상이란 FTA 협상을 진행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의 협상가가 만나 FTA에 대한 양국의 쟁점을 해결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내부협상이란 외부협상을 진행하기 전에 각종 쟁점에 대한 국내 입장을 결정해 나가는 과정을 뜻한다. 다시 말해 우리 협상가가 미국과의 협상에서 취하는 입장과 태도는 국내에서 이미 결정된 것을 이야기하는 일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 때문에 내부협상은 외부협상보다 더욱 중요하다. 내부협상의 경우 한 이슈가 어떤 과정(process)을 통해 어떤 입장(position)으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국가 전체의 협상력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보면 국가가 민주화돼 있을수록, 의사 결정 과정이 분권화돼 있을수록, 국민의 여론이 정책 결정 과정에 포함되는 정도가 클수록 그 국가가 대외협상에서 가지는 국가 전체의 협상력이 커진다.

하지만 이것은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충분조건은 이러한 내부협상의 중요성을 외부협상가 혹은 우리 정부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국정브리핑 자료에서는 국민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야만 또는 단일한 대응을 해야만 우리의 협상력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유감스럽지만 이것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내부협상이 활발히 이뤄진다면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고 전폭적인 지지가 있을 수 없다. 이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가령 미국은 자신들이 원하는 협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내부협상 과정에서 '미 의회 따로, 행정부 따로'식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의회는 이해단체의 핑계를 대고, 행정부는 의회 핑계를 대면서 상대방을 압박해 가고 있다. 이게 협상력이다.

그러니 내부협상이 가지는 중요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외부 협상가나 정부라면 오히려 나라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를 협상 상대에게 제대로 전달해 우리의 협상력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가령 국민이 쌀 시장 개방을 극렬히 반대하고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민주국가에서의 내부협상 중요성을 충분히 아는 외부협상가가 (특히 상대국이 민주화된 나라라면) 다음과 같은 말을 못할 이유가 없다.

"우리도 개방을 하고 싶다. 하지만 이것(쌀)을 개방하면 우리는 정권을 내놓아야 한다. 당신들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이처럼 나라의 총체적인 협상력은 내부협상과 외부협상의 역학 관계에 의해 발생한다. 정부는 한.미 FTA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국정브리핑 자료나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만든 다양한 자료를 통해 국민을 설득하려 하고 있다. 이런 과정이 내부협상의 하나라는 점에서 과거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정부는 여전히 내부협상의 중요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국정브리핑 자료는 한.미 FTA의 대응 기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국회 및 업계, 시민단체 등 이해관계자와 지속적인 대화를 함으로써… 국민의 대표와 긴밀히 협의하고, 협상 과정에서도 여러 쟁점에 대해 국회의 검토와 협조를 계속 구할 예정이다."

관계 부처가 합동으로 만든 자료도 '관련 이해단체들로부터 간담회.세미나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일반국민으로부터도 의견을 수렴하고 있음'을 기본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국회와 업계, 시민단체가 협상 수립을 위한 파트너로 고려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면 피해 당사자에게는 장기적인 국가 발전보다는 자신의 문제가 더 시급하다. 그래서 이들과 대화하고 협의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가 조율되리라 생각하는 건 대단히 어리석다.

그래서 대화와 검토를 위한 수많은 청문회와 간담회는 더 이상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건 이들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것이 협상 전략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체계화된 협상 시스템이다. 한.미 FTA 협상과 관련된 인력을 '협상가 그룹(외부협상 담당)'과 '실무 전문가 그룹(국내 이해관계인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이들의 입장을 협상 전략에 반영)'으로 나눠야 한다. 그런 뒤 이들의 상호교류를 통해 내부협상의 경험이 외부협상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런 내부협상 시스템이 구축되면 이해관계자와 관련 쟁점을 논의하는 실무진이 바로 협상가가 된다. 필요하다면 농업단체와 같은 이해관계자를 바로 협상 자리에 참여하도록 해 자신의 문제가 어떤 형식으로 협상에서 다뤄지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협상가 그룹과 실무 전문가 그룹, 이해관계자가 쟁점에 대해 동일하게 이해하게 된다면 협상이 타결된 뒤의 구조조정과 보상, 조정 문제까지 협의할 수 있게 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필요한 것은 '각계의 의견 수렴'이나 미국과 비슷한 숫자인 100명 내외의 협상팀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이 같은 협상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한.미 FTA를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별도 조정기관을 설립하는 것도 꼭 필요하다. 이 기관이 우리 측 협상 전략을 종합적으로 입안.조율하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체계화된 협상 시스템을 가동하는 것도 이 기관이 할 일이다. 협상 전략은 다음과 같이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우선 농민단체들이 서울 여의도에서 격렬한 데모를 하거나 시민단체들이 한.미 FTA 반대시위를 하는 것을 우리 측 협상 전략의 하나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다양한 목소리가 우리 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국회의원들에게 미국의 소비자 혹은 의회에 보내는 권고문을 채택하게 함으로써 협상 과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미국의 내부협상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언론들에 제한된 형태로나마 보도의 내용과 순서를 전략적으로 결정하도록 요청하는 절차도 필요하다. 한.미 FTA가 성공하려면 내부협상에 '다걸기(올인)'를 해야 한다.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