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정규직 敵은 정규직…현대차를 보면 그렇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현대차 비정규직, 정규직 된다는데 왜 투쟁?…본질은 ‘노노(勞勞)갈등’ 

이병훈 현대기아차 전주비정규직지회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고용노동부에 직접교섭 성사를 촉구하며 단식 민복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원]

이병훈 현대기아차 전주비정규직지회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고용노동부에 직접교섭 성사를 촉구하며 단식 민복을 들어보이고 있다. [뉴스원]

현대차그룹 비정규직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고용노동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팔을 걷어붙이자,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비정규직 노조)는 외려 서울 장교동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점거했다. 이들은 ‘홍반장(만능 해결사 영화 주인공)’을 자처한 정부에게 “사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사측, 정규직 노조와 특별고용 합의 #비정규직 노조 "우리와 직접 협상" 반발 #정규직 노조 양보 필요하지만 #이익 침해 받을까 합의안 못내놔

18일간 관공서를 점거했던 비정규직 노조는 지난 7일 갑자기 점거를 풀었다. 점거 해제 이유로 “고용노동부가 중재하면서 14년 만에 처음으로 현대차와 비정규직 노조의 직접 교섭이 성사했다”는 명분을 들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현대차에 직접 교섭을 지시했다거나 직접 고용을 명령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사태는 한국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정규직 사태의 바로미터다. 갈등이 한창인 다른 사업장과 달리 현대차는 이미 정규직 노조와 사측이 사태의 해법을 제시한 상태다. 또 이미 2012년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규모도 다른 사업장보다 상당히 큰 편이다. 향후 국내 비정규직 문제의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

진실 게임 양상으로 접어든 현대차그룹 비정규직 사태의 해법은 없을까. 복수의 자동차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우선 마주 앉아 갈등을 해소해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는 조언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이미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금까지 6000여명의 사내하도급 근로자를 특별채용했고 앞으로 4년간 3500명을 추가로 뽑는다. 지난해까지 1087명을 정규직으로 채용했던 기아차도 내년(1300여명)까지 사내하도급 전원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과정을 밟고 있다. ▶중앙일보 9월 21일 경제2면

특히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근로자 신분은 이른바 ‘중규직’이 아닌 진짜 정규직으로 바뀐다. 비정규직을 별도 직군(전문직)으로 채용한 신세계 이마트나, 자회사 소속으로 바꾼 인천공항공사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임금·복지 등 처우가 정규직과 똑같다.

◇채용 vs 전환 = 그렇지만 비정규직 노조는 불만이 많다. 이들은 ‘채용’이 아니라 ‘전환’을 요구한다.

‘채용’은 말 그대로 다른 회사(하청기업) 근로자를 경력사원으로 뽑는 개념이다. 이때 사측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그간 일했던 경력의 일부만 인정한다. 약 20개월의 사내하청 경력을 현대차 경력 12개월로 인정해주는 방식이다(최대 10년까지 인정). 이렇게 하면 비정규직 17년 이상 경력은 정규직 10년으로 인정받는다. 7년 일했다면 현대차 입사 4년 차와 동등한 대우다.

서울지방고용청 농성 해제 기자회견 갖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 [연합뉴스]

서울지방고용청 농성 해제 기자회견 갖는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 [연합뉴스]

반면 비정규직 노조  주장대로 신분이 ‘전환’한다면 상대적으로 경력을 더 인정받을 수 있다. 입사 후 2년이 지난 시점부터 하청업체 소속으로 일했던 기간을 모두 현대차 근무 기간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2010년 7월 판결(‘2년 이상 사내하청으로 일한 경우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이 주장의 근거다.

현대차그룹은 판결 이후 현행 파견근로자보호법이 허용하는 형태로 근무형태를 개선했다. 사내하청 근로자가 수행하는 공정은 통째로 떼어내서 사내 협력업체에 맡겼다. 이제 현대차공장에서는 원청근로자와 하청근로자가 같은 장소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또 담당하는 업무 역시 완전히 구분되어 있다. 현대차 사내하청 근로자는 법적으로 ‘파견근로자’가 아니라 ‘도급근로자’다.

돈 문제도 걸려 있다. 그간 정규직보다 덜 받았던 임금차액도 보전해 달라는 게 비정규직 노조 요구다. 단순화하자면 사내하청 근로자가 10년 동안 연평균 6000만원을 받는 동안 현대차 근로자가 연평균 9000만원을 받았다면, 8년 치 임금차액(2억4000만원)을 돌려달라는 것이다.

이밖에 사내 하도급 근로자뿐 아니라 청소·경비·시설관리·요리 등을 하는 협력업체·물류업체 근로자도 정규직으로 바꿔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사법부에 시위 중인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사법부에 시위 중인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 [연합뉴스]

◇노노(勞勞) 갈등부터 풀어야 = 문제는 현대차 정규직 노동조합(민주노총 현대차 지부)과 사측이 이미 특별고용 방식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2014년 8월 아산공장·전주공장, 2016년 3월 울산공장 노조가 사측과 사내하청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특별 고용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에 대해서 비정규직 노조는 “당사자가 아닌 정규직 노조와 합의한 내용은 무효”라고 외친다. 현대차그룹에 “우리와 직접 교섭하자”고 요구하는 이유다.

하지만 현대차가 비정규직과 직접 교섭에 나서는 건 사실상 어렵다. 현행법 위반 소지가 있어서다. 근로자파견법은 사내하청 같은 도급근로자에게 원청기업이 지휘·명령하는 행위나 근로조건 협상을 금지하고 있다. 사내하청 근로자는 엄밀히 현대차가 아닌 다른 회사 정규직 직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나서서 갈등을 풀어낼 수 있을까. 김영문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원칙적으로 노사관계에 행정부는 법적 근거 없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개별 기업의 근로관계는 관련법 범위 내에서 노사자율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같은 목소리를 내야 한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원·하청 근로자 간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원청근로자 노조의 양보·이해가 필수”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정규직 노조는 사 측과 비정규직 노조의 직접 협상을 용인하지 않는다. 노조원 이익을 대변하는 노조의 특성상, 정규직 노조원 이익을 침해받을 수 있어서다. 특별고용 등 채용이나 하청 근로 등 업무분장은 단체협약상 노사 양측의 동의가 필요하다. 또 법적으로도 굳이 현대차 소속이 아닌 근로자에게 정규직 노조가 양보할 필요는 없다. 현대차가 비정규직 특별 채용을 현대차 정규직 노조와 합의한 이유기도 하다.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던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 [연합뉴스]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던 현대기아차 비정규직 노조. [연합뉴스]

민주노총 금속노조라는 우산 아래 ‘한 지붕 두 가족’인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는 그렇다면 왜 특별고용 문제에 합의안을 내놓지 못할까. 노동계 관계자는 “금속노조 집행부는 정통성 면에서 비정규직 노조와 노선을 같이한다. 그렇지만 노조 회비(분담금) 측면에서 가장 지분(30% 이상)이 큰 현대차 지부 입장에선 비정규직 노조가 정규직 노조의 이익을 침해할 수도 있다. 결국 현대차 지부가 사측과 손을 잡으면서 양측이 헤게모니 싸움을 벌이는 구도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적으로 직접적 근로관계에 있는 정규직 노사가 교섭을 통해 결정한 내용을 정부가 중재하겠다고 나서는 건 ‘도를 넘은 중재’”라며 “어느쪽 편을 드는 게 아니라 노사자율주의 원칙을 존중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조언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