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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 제4 인터넷은행 따내라 … 업계 합종연횡 탐색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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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내년 4월이나 5월쯤 제3·4 인터넷전문은행 예비 인가가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

금융위 “내년 4~5월 예비인가” #IT·은행·증권사 컨소시엄 꾸려야 #은행은 신한·농협·하나 관심 #증권은 키움·메리츠종금 나서 #대기업 대출 막혀 소매금융 치중 #신용분석할 개인정보 활용 못해 #다양한 산업군 참여하게 길 트고 #개인정보보호 규제 숨통 터줘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 날인 21일 기자실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디데이(D-day)’는 나왔다. 관건은 내년 출범할 새로운 인터넷전문은행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다.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 타이틀을 잡으려는 치열한 합종연횡이 예상된다.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신청에 앞서 기존 정보기술(IT) 기업과 은행·증권사 등의 조합(컨소시엄 구성)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인터넷전문은행에 대한 기존 은행과 증권사의 관심은 크다. 가장 적극적인 건 시중은행이다. 빠르게 위축되는 오프라인 영업망, 점점 커지고 있는 고객의 비대면 거래 수요, 포화 상태에 접어든 기존 시장 등을 고려하면 은행 입장에서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제1·2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예상보다 빠르게 시장에 안착하며 이 대열에 합류하지 못했던 은행들이 잰걸음을 하고 있다.

카카오뱅크(KB국민은행)와 케이뱅크(우리은행) 대주주로 이미 참여한 은행과 특수은행, 지역은행, 외국계 은행을 뺀 은행이 후보군이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 KEB하나은행이 추가 인터넷전문은행 인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제1·2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신청 때 참여했던 IBK기업은행은 이번엔 불참 의사를 밝혔다. 소매 금융 중심의 인터넷전문은행이 기업 금융 중심의 은행 특성과는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은행 못지않게 적극적인 곳은 증권업계다. 다른 은행과 금융지주로 엮이지 않은 독립계 증권사 중심으로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키움증권과 메리츠종금증권이 대표적이다.

은행과 증권업계의 관심에도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제3·4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의 중심이 될 IT 기업 후보가 마땅치 않다. 이번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IT기업의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에 대한 걸림돌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상황은 여의치 않다.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네이버는 소극적인 반응이다.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시행령에 ‘대기업 배제’ 규정이 담길 예정인 탓에 삼성전자·SK텔레콤 등도 유력 후보군에서 거리가 멀다. 넷마블이나 넥슨은 가능하지만 회사 쪽에서 시큰둥하다. 경험도 없고, 규제 리스크도 큰 은행업에 게임업체가 뛰어들 만한 유인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1·2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때 ‘아이뱅크 컨소시엄’을 구성해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 인터파크가 IT 기업 중에선 가장 적극적이다. 하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도전 의사를 내비친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하려면 자본금을 포함해 수조 원의 투자가 필요한 데 자기자본이 1000억 원대인 회사와 같이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다”고 말했다.

때문에 다양한 기업들이 인터넷전문은행의 주주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IT기업 외 다양한 산업군에 대한 지분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보다 17년 앞서 인터넷전문은행을 출범시킨 일본이 그러한 예다.

일본은 은산 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소유 제한) 개념이 없어 다양한 산업군의 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을 설립했다. 일본 최초 인터넷전문은행인 ‘재팬넷뱅크’가 대표적이다. 야후재팬이 공동 주주(지분율 41%)인 재팬넷뱅크는 야후재팬 기반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발생하는 결제서비스 수수료가 주 수익원이다. 대주주의 적극적인 영업 지원 덕에 출범 5년 만에 흑자 전환했다.

세븐일레븐이 대주주(지분율 38%)인 ‘세븐뱅크’의 성공 비결도 대주주와의 연관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 전역에 깔린 수만 개의 세븐일레븐에 설치된 ATM이 곧장 세븐뱅크의 영업망이 됐고 은행·보험·증권 등 수백 개의 금융회사가 세븐뱅크의 ATM과 제휴 관계를 맺었다. 이런 비즈니스 모델 덕에 세븐뱅크의 비이자이익 비중은 95%를 넘고 설립 3년 만에 흑자 전환했다.

일본 근무 경험이 많은 한 은행 고위 관계자는 “일본에는 은산 분리 개념이 없지만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매우 까다롭다”며 “여러 가지 사업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인터넷전문은행에 도전할 기회를 줘야 일본처럼 다양한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는 인터넷전문은행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안착을 위한 과제는 더 있다. 이번에 국회 문턱을 넘은 특례법조차 인터넷전문은행 입장에서 일보 전진이자 일보 후퇴이기 때문이다.

비금융주력자의 지분을 34%로 높인 덕에 지배구조상의 규제는 일부 해소됐지만 중소기업을 제외한 기업 대출 길을 막으면서 영업상의 규제는 오히려 강화돼서다.

한 인터넷전문은행 관계자는 “IT기업이 대주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면서 대주주가 ‘여기’에서 ‘저기’로 바뀐다는 것만 달라질 뿐 영업권은 오히려 줄었다”며 “업무적으로는 소매(리테일) 영업에만 집중해야 하는 환경에서 얼마나 새로운 상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생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터넷전문은행의 혁신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은행 업무가 개인 금융에 편중돼 기업 금융 업무를 거의 못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소매 영업에서의 혁신도 개인정보보호법 규정이 풀리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인터넷전문은행이 빅데이터를 이용한 자체적인 신용정보 분석을 통해 개인신용대출을 하려면 차주에 대한 개인정보를 다양하게 활용해야 하지만 현행법상에선 이것이 불가능하다.

김기홍 경기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과도한 규제로 인터넷전문은행이 빅데이터를 통한 신용분석을 할 수 없다”며 “이번 특례법으로 인터넷은행이 자본 확충을 하더라도 제대로 된 신용평가와 분석을 할 수 없다면 ‘메기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조현숙·정용환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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