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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소장 한국영화 ‘평양 폭격대’ 해외서 찾아 기증한 청년

중앙일보

입력

“북한 김정일도 소장한 한국영화 ‘평양 폭격대’. 국내엔 없어 해외에서라도 찾고 싶었죠.”

2012년부터 박지환씨가 수집해 온 한국 고전영화들. [사진 박지환씨]

2012년부터 박지환씨가 수집해 온 한국 고전영화들. [사진 박지환씨]

공군부대가 평양을 폭격하는 내용이 담긴 반공 영화 ‘평양 폭격대(1971)’, 일본군에 항거한 독립군의 활동상을 그린 한국영화 ‘전쟁과 인간(1971)’.

박지환씨 한국 고전 영화 160편 찾아 기증 #중2 때 시작해 벌써 6년 째 재능기부 중

이 영화들은 함경북도 청진 출신인 신상옥(1926~2006년) 감독의 대표작이다. 개봉 이후 '평양 폭격대'는 제11회 대종상 반공 영화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전쟁과 인간'은 제17회 타이페이 아태영화제 감독상, 남우주연상 수상, 제8회 백상예술대상 작품, 각본, 음악, 감독상을 휩쓸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들은 원본 필름이나 비디오테이프 등 자료가 남아있지 않아 그동안 국내에선 감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최근 20대 청년이 평양 폭격대와 같은 오래된 한국영화를 한국영상자료원에 꾸준히 기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앞으로 희귀한 영화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영화를 찾아 기증한 이는 강원도 동해시에 사는 박지환(21)씨다. 그는 현재 상근예비역으로 군 복무 중이다.

박지환씨가 지난해 3월 찾아낸 신상옥 감독의 영화 '평양 폭격대' [영화 화면 캡쳐]

박지환씨가 지난해 3월 찾아낸 신상옥 감독의 영화 '평양 폭격대' [영화 화면 캡쳐]

박지환씨가 지난해 3월 찾아낸 신상옥 감독의 영화 '평양 폭격대' [영화 화면 캡쳐]

박지환씨가 지난해 3월 찾아낸 신상옥 감독의 영화 '평양 폭격대' [영화 화면 캡쳐]

해외로 수출된 원본 필름 어딘가에 있다고 확신

박씨는 20일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지금은 돌아가신 신상옥 감독이 쓴 책에서 ‘평양 폭격대’ 작품을 영화광인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사망)이 소장하고 있다는 내용을 봤다. 이후 (평양 폭격대)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국내엔 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돼 해외에서 찾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상에서 알게 된 조선족 영화수집가를 통해 영상파일로 변환된 평양 폭격대를 받았다. 원래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10분인데 박씨가 받은 영화는 영어권 국가로 수출되면서 1시간10분으로 재편집된 것이었다.

박씨는 “평양 폭격대와 전쟁과 인간 두 작품 모두 대사도 영어로 더빙된 것이라 아쉬웠다”며 “어딘가에 원본 자료가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앞으로도 해외로 수출된 한국 고전 영화 원본 자료를 찾는 데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중학생이던 2012년부터 온라인을 통해 홍콩과 영국, 미국 지역의 사이트를 검색해 원본 필름 등이 없는 희귀 영화를 찾아왔다.

6년 간 한국영상자료원에 기증한 영화만 160편이 넘는다. 자료 수집하는 데만 1000만원을 넘게 썼다. 구입비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이다.

2012년부터 박지환씨가 수집해 온 한국 고전영화들. [사진 박지환씨]

2012년부터 박지환씨가 수집해 온 한국 고전영화들. [사진 박지환씨]

2012년부터 박지환씨가 수집해 온 한국 고전영화들. [사진 박지환씨]

2012년부터 박지환씨가 수집해 온 한국 고전영화들. [사진 박지환씨]

스필버그 감독 영화 보고 영화에 빠져

이 같은 이유로 한국영상자료원은 2012년 12월 박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2014년엔 영상자료원의 마크를 새겨 넣은 순금 배지를 선물하기도 했다.

박씨가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당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쥬라기 공원’을 보고 영화에 눈을 떴고, 그때부터 스필버그 감독의 작품을 모두 찾아봤다.

영화에 대한 관심은 한국 고전 영화로 이어졌다. 중학교 2학년 때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이두용 감독의 ‘피막’, 정진우 감독의 ‘석화촌’ 을 보고 한국영화의 예술성을 알게 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박씨는 자신이 보고 싶은 한국영화 상당수가 국내에 자료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영화 수집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그가 수집한 영화는 비디오테이프 600편과 디지털 파일 등을 합쳐 무려 1200편에 달한다.

1989년에 제작한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의 촬영 감독인 구중모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박지환씨. [사진 박지환씨]

1989년에 제작한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의 촬영 감독인 구중모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박지환씨. [사진 박지환씨]

문체부 한국 고전 영화 자료 찾는 데 힘써달라

박씨는“아직도 찾고 싶은 영화가 많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영화광이라 한국 고전 영화를 많이 수집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한국 고전 영화에 관한 자료를 찾는 데 힘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원로 영화인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수집한 영화 자료를 해당 영화를 찍은 감독들에게도 전달해서다.

여자가 화장을 지울 때, 망나니 등을 연출한 변장호 감독은 “감독 본인들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작품을 이렇게 찾아주는 청년이 있어 너무 고맙다”며 “옛날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영화인보다 많이 알고 있어 앞으로 좋은 영화감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최초로 완전 동시녹음을 시도해 영화 기술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정진우 감독은 “(박지환)머리 속은 한국영화 재료로 가득 차 있다. 앞으로 한국 영화계에 큰 재산이 될 것 같다”며 “기초가 탄탄한 청년이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해 영화계가 발전하는데 기여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2015년 박지환씨가 '공처가(1958)'를 연출한 김수용 감독, '5인의 해병(1961)'을 연출한 김기덕 감독과 만나 찍은 사진. [사진 박지환씨]

2015년 박지환씨가 '공처가(1958)'를 연출한 김수용 감독, '5인의 해병(1961)'을 연출한 김기덕 감독과 만나 찍은 사진. [사진 박지환씨]

감독 되면 예술성 뛰어난 작품 만들 것

영화감독이 꿈인 박씨는 “상업성 흥행영화보다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에 매력을 느낀다. 앞으로 주제가 강하고 만든 사람의 의식이 반영된 독특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1960~1970년대는 연간 200편 이상의 영화가 쏟아져 나오던 시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절엔 영화 원본 필름이 그대로 해외로 수출됐다. 이 때문에 원로 영화감독들은 자신의 작품을 소장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1974년 한국영화 필름보관소(현 한국영상자료원)가 설립되면서 영화 필름을 보관하기 시작했다.

동해=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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