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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지성] '옛사람 72인에게 지혜를 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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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신간 '옛 사람 72인에게 지혜를 구하다'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반도에서 이름을 떨친 72명의 삶을 통해 한국사를 재조명했다. 72명을 단순 나열한 것은 아니고, 일종의 라이벌 혹은 보완적 관계라 할 수 있는 인물을 쌍으로 묶었다.

고구려 고국원왕과 백제 근초고왕, 원효 대사와 의상 대사, 왕건과 견훤, 묘청과 김부식, 태조 이성계와 최영 장군, 흥선 대원군과 명성황후, 이승만과 김구 등의 삶을 비교하며 역사에 대한 대중 독자의 흥미를 북돋워가는 방식이다.

저자 김갑동(대전대 한국문화사학과) 교수는 개인의 삶과 사회의 제도를 운영해가는 지혜를 우리 역사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지혜'는 거창한 이념적 교훈을 다시 확인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성공과 실패를 선과 악 이분법으로 재단하지 않는다. 깨달음은 단순하고도 소박하다. 어떤 역사적 개인이나 왕조를 막론하고 지나치거나 모자라면 결국 화를 당하게 됨을 경계한다.

조선시대 '중종과 조광조'를 다룬 대목을 보면, 이들은 임금과 신하 관계로 신뢰를 쌓아가며 유교적 이상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개혁에 착수한다. 하지만 원칙만 내세우고 급하게 개혁을 추진하다 오히려 기성세력의 모함에 빠져 중도 하차하게 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무조건 기존의 것을 바꾼다고 하여 그것이 곧 개혁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또 어떤 제도든 간에 완전무결한 것은 없으므로 잘못하면 오히려 부작용을 가져온다"고 진단한다. 역사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삼문과 신숙주'편에선 조선시대 최대 쟁점 가운데 하나인 세조의 왕위 찬탈 문제를 다룬다. 세조를 돕고 반대한 두 인물의 엇갈린 삶을 살펴보며 저자는 이들을 과연 반역자와 충신으로 갈라 보는 것이 타당한지를 묻는다. 당시는 조선이 건국된지 60여 년이 지나 여러 면에서 체제를 정비해 가던 시점이었고, 또 지배세력의 수탈.억압에 백성이 항거하는 상황도 아니었다면, "지도자의 문제는 선악의 입장에서 논할 수 없고, 단지 신하의 입장에서 누구를 선택하느냐의 문제였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이다.

신라 불교의 양대 산맥인 '원효와 의상'은 각기 대중불교와 귀족불교의 노선적 차이는 있었지만 서로를 배척하지 않은 점을 저자는 중시한다. 서로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상대의 좋은 점을 수용하면서 신라 불교와 사회를 살찌우는 데 함께 기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대화의 갈림길에서 맞선 '대원군과 명성황후'는 달랐다. 이들이 나름대로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개혁을 하려했다는 점을 일단 인정하면서 저자는 두 인물의 정책이 서로 음모와 방해로 번번이 좌절되고 만 일을 아쉬워한다. 결국 조선은 준비없는 개방을 해 한일합방이란 비극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밖에 이 책엔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의 라이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정년, 장보고를 배신한 부하 염장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도 소개된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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