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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금융위기 진원지 될라 … 중국, 부채와의 전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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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국 100 위안 지폐. [로이터=연합뉴스]

중국 100 위안 지폐. [로이터=연합뉴스]

# 미국 힐튼 호텔그룹, 독일 대형은행 도이체방크, 세계 2위 항공 케이터링 회사 게이트그룹…. 중국 HNA그룹이 최근 3년간 인수했거나 지분 참여한 세계적 기업들이다. HNA그룹은 공격적인 해외 자산 쇼핑으로 한때 글로벌 인수합병(M&A)계의 황태자로 대접받았다.

금융위기 10년 맞아 위기감 #중국 빚 10년간 21조 달러 늘어 #글로벌 부채 증가액의 43% 차지 #돈 묶여 디폴트 늘어도 대출 규제 #무역전쟁 충격 대비, 돈 풀었지만 #이번엔 국유기업 부채비율 낮추기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확 달라졌다. 유동성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이들 기업을 되파는 데 주력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HNA그룹은 앞으로 18개월에 걸쳐 도이체방크 지분 전량을 단계적으로 매각할 방침”이라고 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HNA그룹은 도이체방크 지분 7.6%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가치로는 100억 달러(약 11조원)가 넘는다.

# 지난 1일 중국 후난성 레이양시에서는 학부모 600여명이 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가 던진 맥주병과 벽돌에 경찰 30여 명이 다칠 만큼 시위는 격렬했다.

발단은 레이양시의 재정 파탄이었다. 시 교육 당국이 재정 고갈을 이유로 공립 초등학교 5~6학년생 전원을 사립학교로 전출시키자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났다.

시는 빚을 내 석탄 개발사업을 벌였는데, 석탄 채굴업이 불황에 빠지면서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하게 됐다. 지난 5월에는 시 공무원 급여를 지급하지 못했다. 레이양시는 빚더미에 오른 중국 지방 정부 실태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WSJ은 전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글로벌 금융위기 10년을 맞아 중국 부채 문제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세계 경제가 새로운 위기를 맞을 경우 중국의 부채 리스크가 방아쇠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이 진단했다.

15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문가를 인용해 “중국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대규모 재정 투입으로 타격을 피했지만, 지난 10년간 부채를 극적으로 늘린 결과 다음 금융위기의 중심에 설 수 있다”고 전했다.

WSJ은 다음 금융위기를 불러올 5가지 요인 중 하나로 중국의 부채 문제를 꼽았다. WSJ은 “중국은 부채로 국가 경제 성장을 이룬, 드문 사례”이며 “중국 부동산 거품이 꺼지거나 지방 정부가 채무불이행에 빠질 경우 세계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고 전했다.

JP모건의 주하이빈 중국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중국 부채 문제는 중국 경제의 핵심 취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주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경제 규모와 부채 수준, 그리고 광범위한 국제 금융 연결망을 고려할 때 중국 부채 문제가 터지면 세계 다른 곳으로 신속히 전이될 수 있다”며 “중국이 다음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부채는 10년간 급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부채 증가액의 43%를 중국이 차지했다. 2007년 4조9000억 달러이던 중국 부채는 2016년 25조5000억 달러로 급증했다.

지난해 말 중국의 총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265.85%에 달한다. 기업 부채는 160%로 가장 많았다. 기업과 가계부채를 더한 비율은 208.7%였다. 2007년의 115.6%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16년 미국과 유로존은 각각 152.2%, 159.7%에 그쳤다.

중국 정부도 부채 문제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부채 감축(deleveraging) 정책에 초점을 맞췄다. 대출 문턱을 높이고 비은행권 대출 등 ‘그림자 금융’을 규제했다.

그 결과 기업이 신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존 빚을 갚지 못하는 디폴트(채무불이행)가 이어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333억 위안(약 5조5000억원)의 기업 채무불이행이 일어났다. 2016년 전체 채무불이행액 300억 위안을 넘어섰다.

기업의 현금 흐름도 나빠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중국 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은 1030억 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2012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중국 은행원이 100위안짜리 지폐를 세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은행원이 100위안짜리 지폐를 세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들어 중국 경제 성장 속도는 눈에 띄게 둔화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과의 무역전쟁이 시작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격 수위가 높아지면서 중국 정부가 금융 정책 방향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과 8월 중국산 제품 500억 달러 규모에 25%의 관세 부과를 시작했다. 또 다른 20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는 곧 시작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2670억 달러 규모에 대해서도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파상 공세가 이어지자 시진핑 정부는 중국 경제에 대한 충격을 줄이기 위해 디레버리징 강도 조절에 나섰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7월 말 열린 국무원 상무회의에서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결정했다.

지방 정부와 국유기업의 부채 축소를 독려하던 기존 방침과 달라졌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경기가 후퇴하는 것을 우려해 선제적 조처를 한 것이다.

앞서 7월 초 중국 인민은행은 은행의 지급준비율을 0.5%포인트 낮췄다. 대형 은행의 경우 지준율이 16%에서 15.5%로 낮아지면서 약 7000억 위안의 자금이 시중에 풀리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부채 감축의 고삐를 완전히 푼 것은 아니다. 중국 경제전문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중국 국무원은 13일 국유기업의 부채 비율을 줄이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모든 국유기업은 2020년 말까지 자산 대비 부채비율을 2017년 말보다 2%포인트 낮추도록 했다.

지방 정부 부채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국 서부 신장위구르 자치구 소재 국유기업은 7300만 달러 규모 채권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갚지 못했다. 후난성 레이양시나 신장위구르 같은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자 정부가 관리 강화를 표방한 것이다.

당분간 중국 금융 정책에 혼선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류쿤 중국 재정부장은 지난달 말 “상환 능력이 부족한 지방 정부의 건설 사업과 관련 자금 조달 행위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고 WSJ이 전했다.

JP모건의 주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가 부채 감축 중단을 선택하면 엄청난 실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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