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성관계 동영상 재촬영해 전송하면 처벌 못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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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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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합의하고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컴퓨터로 재생한 후 그 화면을 휴대전화로 찍어 타인에게 전송했더라도 성폭력처벌법을 어긴 게 아니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성폭력처벌법이 금지하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영상을 전송하는 행위’는 다른 사람의 신체 그 자체를 직접 촬영한 경우에만 해당한다는 이유에서다.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모(25)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성폭력처벌법 14조1항은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해 촬영하거나 이를 반포·판매·임대 등을 한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다.

또 같은 법 14조2항은 ‘1항의 촬영이 당시에는 촬영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는 경우에도 사후에 그 의사에 반해 촬영물을 반포·판매·제공 등을 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에서는 타인의 신체를 ‘직접’ 찍은 것만 촬영물인지가 쟁점이 됐다.

재판부는 “14조1항의 촬영 대상은 ‘다른 사람의 신체’로 규정돼 있어 2항의 촬영물 또한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촬영물을 의미한다고 해석해야 한다”며 “다른 사람의 신체 그 자체를 직접 촬영한 것만이 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촬영물에 해당하고 다른 사람의 신체 이미지가 담긴 영상을 촬영한 촬영물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성관계 동영상 파일을 컴퓨터로 재생한 후 모니터에 나타난 영상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했더라도 이는 피해자의 신체 그 자체를 직접 촬영한 행위가 아니다”라며 “그 촬영물은 성폭력처벌법 14조2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촬영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 한 유흥주점에서 일하던 이씨는 손님으로 만난 A(42)씨와 내연관계로 지내다 헤어지자는 말을 듣고 합의 하에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재생한 장면을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 3장을 2016년 1월 A씨 배우자에게 전송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A씨에게 “내 인생 이렇게 만들어 놓은 대가 당신도 치러야지” 등의 문자와 함께 성관계 영상을 찍은 사진 1장을 보낸 혐의도 받았다.

1심은 “성폭력처벌법상 촬영물이 반드시 타인의 신체 그 자체를 직접 촬영할 경우에만 한정할 것은 아니다”라고 유죄를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2심도 성폭력처벌법 적용대상에 “촬영물을 그대로 복제하거나 사진의 동일성을 유지한 상태에서 다른 매체로 저장한 뒤 반포·판매·전시하는 경우도 포함됐다고 해석하는 게 타당하다”며 “규정을 좁게 해석하면 촬영물을 복제하거나 저장 매체를 바꾸는 손쉬운 방법으로 처벌을 회피할 수 있게 돼 입법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유죄 판단은 성폭력처벌법 14조 2항에 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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