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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으로 일자리 늘린 아르헨티나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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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

경제 위기를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는 최근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위 주체는 트럭 운전사부터 대두박 공장 노동자까지 다양한데, 공무원이 절반을 넘는다.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일어난 시위 462건 가운데 공공부문이 벌인 시위는 254건(54.9%)이었다. 나라가 어려운데 공무원이 더 열심히 머리띠를 둘렀다는 얘기다.

지난 5일 국공립 기관 소속 보건의료인 수백 명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에 있는 보건부 청사를 에워쌌다. 보건부를 국(局) 단위로 축소해 사회개발부로 통합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시위다. 노동부 등 다른 부처 공무원도 같은 이유로 집결했다. 외신 사진 속 공무원들 표정은 덤덤했다. 더러 미소도 보였다.

교원노조도 거리로 나왔다. 8월 말 교사들은 72시간 파업하며 24%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교수노조는 30%를 올려 달라고 했다. 정부는 15% 인상안을 고집하다가 25%로 타협했다.

이들은 정부의 긴축 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올 초부터 심상치 않았다. 인플레이션이 40%로 치솟고 페소화 가치는 연초 대비 50% 급락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45%로, 다시 60%로 올렸지만 외국 자본의 이탈을 막지 못했다.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다시 손을 벌리게 됐다. 5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기로 했다. 그 대가로 정부 부처와 공공지출을 축소해 재정 적자를 줄이기로 약속했다.

19개 정부 부처를 11개로 줄이는 작업이 시작됐다. 긴축 정책은 불가피한 선택이다. 하지만 나라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공무원이 제일 먼저 반대 깃발을 올렸다.

IMF 등에 따르면 아르헨티나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층이다.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공무원들이 정부 구조 개혁을 통한 국가 회생의 기회를 막은 셈이다.

단체행동의 힘은 머릿수에서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국내총생산(GDP)의 12.5%를 공공부문 임금으로 지출한다.

공무원 수는 2001년부터 2014년 사이에 70% 늘었다. 전체 일자리에서 공공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26.08%에 이른다(2016년 노동부). 일하는 사람 4명 중 1명이 공무원이란 얘기다.

2001년 금융 위기 이후 아르헨티나는 손쉽게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을 택했다. 공무원 증원이다.

공무원은 일단 늘어나기 시작하면 멈추기가 어렵다. 예산과 정보를 쥐고 있어 증원을 위한 조직 논리를 만드는 데 탁월하다. 공무원연금까지 고려하면 재정지출이 막대하다.

더 큰 부작용은 민간 고용이 위축될 위험이다. 공무원이 많아지면 규제가 늘어난다. 민간이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이 좁아진다. 달리는 데 멈춰 세우는 호루라기가 많아진다. 민간 일자리 늘리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악순환이다.

행정 수요에 따른 증원이 아니라 일자리를 위한 일자리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민간 일자리를 늘리지 못하면서 공무원 일자리만 늘리면 아르헨티나가 먼 얘기가 아니다.

박현영 글로벌경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