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수다] 고교 논술방 - 절대적 진리가 존재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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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2월 가자지구에 모인 팔레스타인 유치원 아이들이 지하드 깃발을 들고서 중동 평화를 위한 제네바협정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과격 시위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는 평화적 방법이 사회나 국제적 갈등을 치유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다. [중앙포토]

◆ 출전: (가)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나) 베르톨트 브레히트, 『어느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그림 자료들

◆ 제시문 해설

객관적 실재 또는 절대적 진리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한가. 이 물음은 여러 차원에서 중요하다. 제시된 자료에서는 공통적으로 객관적 실재에 직접 도달하는 것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가)는 실재와 그 표현은 서로 다르며 표현은 실재를 추상한 것에 불과하기에 결코 실재와 혼동되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실재의 표현에 불과한 것을 실재라고 여기는 잘못을 범하곤 한다. (나)는 역사 서술의 예를 통해 지배층과 기층 민중이 본 역사가 각각 어떻게 다른지를 말하며, (다)는 사람마다 동일한 실재를 어떻게 다르게 볼 가능성이 있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동일한 실재에 대해 다양한 표현이 공존할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이내 모든 관점이 허용된다는 식의 상대주의로 치닫게 될 위험에 빠진다. 그렇지만 세상에 모든 것이 다 동시에 옳기란 어렵다. 객관적 진실에 대한 탐구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제시 자료를 절대적 상대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근거로 삼는 것은 문제의 취지에 어울리지 않는다.

◆ 학생 글 - 김재경(숙명여고 3)

(1) 인간 사회에서는 사람들 간의 의견 충돌과 그로 인한 분쟁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의견을 주장하는데, 그 주장을 남에게 관철하려 하거나 동의를 강요할 때에 분쟁은 발생한다. 이러한 현상은 신념이나 알고 있는 진리가 절대적이라는 믿음에서부터 출발한다. 실제로 많은 존재나 관념들이 절대적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에 미숙하다.

(2) 진리를 기술하는 추상적 개념이나 언어가 절대적이지 않음은 옛날부터 노자, 장자 등 많은 이들이 주목해 왔다. 우리는 궁극적인 진리를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이해한다. 그러나 단어들의 의미나 범주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또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감각기관의 지각 또한 절대적이지 않다. 따라서 궁극적 실재를 적대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가능치 않고, 우리가 언어를 통해 이해하고 주장하는 것 또한 상대적인 개념이다.

(3)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역사도 완전하고 절대적인 진실은 아니다. 지배층 중심으로 서술된 역사는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일부분만을 나타낼 뿐이다. 과거를 완전하게 재현하여 이해하거나 역사를 절대적인 진리의 집합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상대적이며 여러 면의 일부임을 이해하는 것이다.

(4) 이러한 상대성을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사회.문화적인 대립과 분쟁을 완화시킬 수 있다. 한 가지만 옳다고 하는 아집, 의견의 충돌로 인한 과격한 대립, 자문화 중심주의 등 만연해 있는 문제들은 상대성과 다면성에 대한 인식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의 그림들은 여러 가지로 보일 수 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을 것이며, 그림이라는 실재를 표현하고 기존의 개념들로 나타내는 다양한 방법들일 뿐이다. 이와 같은 인식이 관용을 낳을 것이며, 과격한 대립보다는 서로를 인정하는 대화의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다.

(5) 그러나 이것이 모든 사람의 의견이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상대성이란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기본적인 진리 위에서 갖추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자유는 인간이 지속적으로 추구해온 진리이다. 자유라는 단어와 개념은 상대적이며 그것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다. 자유는 방종과도 쉽게 연결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의 궁극적인 실재는 이해하고 있다. 자유라는 말로 표현될 때는 무책임한 자유인지, 누구를 위할 자유인지 정확히 범주가 정해져 있지 않지만 궁극적인 자유의 실재는 존재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기본적 진리를 토대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관용을 베풀 때에 앞서 제기 되었던 많은 문제들의 해결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6) 개인의 인식 변화와 함께 국가나 기업, 제도가 방법을 택함에 있어 상대성을 견지한 방법을 택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요구를 관철함에 있어서 폭력을 휘두르는 과격 시위보다는 상대방이 바라본 관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타협점을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진행 될 때에 상대성, 양면성이라는 불완전성은 우리 삶과 사회에 보다 나은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 총평.첨삭

주어진 자료 적절히 활용 뛰어난 대안 내놔

이번 문제에 답한 학생들은 대부분 특정 자료에 치우쳐 답을 했다. 김재경 학생은 주어진 자료를 골고루 활용하면서 오늘날 사회 문제를 예로 들며 적절하게 자기 의견을 개진했다는 점에서 탁월했다. 또한 [2][3][4] 문단을 통해서 제시문을 자기 해석대로 적절히 요약하면서도, 각 제시문의 공통된 관점을 잘 연결시켰다.오늘날의 문제와 관련해서 사람들 간의 의견 충돌과 분쟁이 진리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잘 지적하면서 결론에서 “상대성, 양면성이라는 불완전성”이 오히려 우리 삶과 사회를 좋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전망 제시는 고등학생 수준을 넘어서는 통찰이라 평가된다. 동시에 [5] 문단에서 관용이 모든 것을 향한 관용이 아니라 인류가 꼭 지켜야 할 가치를 전제한 관용이라는 점을 언급함으로써, 무조건적이고 무정부적인 상대주의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치닫지 않도록 견제한 점도 눈에 띈다.

짧은 분량인데도 비교적 풍요로운 내용을 담은 경제적인 글이라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정해진 시간 동안 쓴 글이어서인지, 세부적인 대목에서는 실수도 있고 [4] 문단의 다섯 번째 문장은 의미가 모호하다. 이런 옥에 티를 고쳐 간다면 더 좋은 글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김재인 유웨 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학원 대표강사

◆ 다음 주제는

고교생 대상 실전 논술코너를 격주로 운영합니다. 중앙일보 joins.com의 '우리들의 수다(cafe.joins.com/suda)' 고교 논술방에 글을 올려주세요. 매회 20명을 골라 유웨이중앙교육 오케이로직학원 김재인 대표강사가 첨삭지도를 해드립니다. 또 우수 논술 한 편을 골라 총평과 함께 지면에 게재합니다. 논제와 관련된 제시문은 지면 사정상 '우리들의 수다' 고교 논술방에만 올립니다.

▶논제:제시문들에서 드러난 관점을 고려하여, '보편성(世界性)'과 '개별성(地域性)'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1600자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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