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캐나다연금 수익 7분의 1 이유 ‘국내 자산, 채권에 집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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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CPIB)는 캐나다 공적연금의 운용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캐나다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2000만여 명이 가입해 있는, 캐나다의 국민연금 격이다. 자산 규모는 3561억 달러(올해 3월 말 기준, 약 399조원)로 세계 10대 연기금에 이름이 올라있다.

캐나다 연금(CCPIB) 상반기 수익률 6.6% #국민연금 0%대 수익률과 대조적 #국내 주식과 채권에 집중, 오히려 위험 #해외 주식, 대체투자 비중 늘려야

하나금융투자는 5일 발간한 ‘글로벌 주요 연기금 2018년 상반기 성과 분석’ 보고서에서 캐나다 공적연금은 올해 상반기(1~6월) 6.6% 수익률을 기록했다고 추산했다. 같은 기간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0.9%에 그쳤다. 캐나다 공적연금의 7분의 1 수준이다.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캘퍼스, CalPERS)의 상반기 수익률 1.2%에도 뒤진다. 국민연금보다 뒤처진 건 일본 공적연금(GPIF) 정도다. 상반기 1.9% 손실을 봤다.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연합뉴스]

전북 전주시 국민연금공단. [연합뉴스]

지난해 전 세계 금융시장은 호황을 누렸지만 올해 상황은 달랐다. 세계 증시는 출렁였고, 신흥국 위기에 채권시장도 충격을 피하지 못했다. 이런 ‘혼돈의 시기’에 각 연기금의 투자 내공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캐나다 6.6% 대 한국 0.9%. 두 나라 공적연금의 수익률을 가른 가장 큰 요인은 자산 비중의 차이라고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지적한다. 김 연구위원은 “서구권 연기금인 캐나다 공적연금과 미국 캘퍼스는 전통적으로 위험 자산 중심으로 포트폴리오(자산 배분)를 구성해왔고 반대로 국민연금과 일본 공적연금은 채권 위주의 운용 전략을 유지해왔다”며 “운용 수익성 면에서 주식 비중이 높은 캘퍼스와 캐나다 공적연금이 대체로 국민연금, 일본 공적연금보다 높은 성과를 얻어온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캐나다 공적연금은 자산의 59.1%(올 상반기 기준)를 주식에 투자했다. 여기서 6.9% 수익을 냈다. 채권엔 자산 17.4%를 투자했는데 여기선 0.2% 손실이 났다. 채권은 안전 자산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위험 투자로 분류되는 부동산에 자산 12.9%, 사회기반시설에 10.6%를 투자했는데 역으로 수익률을 견인했다. 상반기에만 각각 10.1%, 11.4% 수익을 냈다. 또 자국 금융자산 투자 비중은 15.1%에 불과하다. 미국(37.9%), 아시아(20.4%), 유럽(13.2%) 등 다른 국가에 더 많이 투자하고 있다. 이런 투자 전략이 위험 분산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상반기 6% 넘는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국내 주식과 채권 투자에 집중하는 현행 국민연금 투자 전략이 장기적 관점에선 오히려 투자 위험도를 높이고 있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중앙DB]

국내 주식과 채권 투자에 집중하는 현행 국민연금 투자 전략이 장기적 관점에선 오히려 투자 위험도를 높이고 있다고 전문가는 지적한다. [중앙DB]

한국 상황은 정반대다. 채권에만 자산 절반 가까이를 투자하고 있다. 주식 비중은 38% 남짓이다. 그마저도 국내 채권ㆍ주식이 대부분이다. 부동산, 인프라 같은 대체투자 비율은 10% 수준에 그치고 있다. 국민연금은 상반기 국내 주식(수익률 -5.3%)과 국내 채권(1.2%)에서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이를 만회한 건 해외 주식(4.6%)과 대체투자(4.9%)다.

물론 저조한 수익률이 현재의 국민연금 시스템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지방에서 근무해야 하는 데다 처우가 나빠 우수 인력이 외면하고 있어서다. 투자 방향을 결정해야 할 최고투자책임자(CIO)도 14개월째 공백이다. 신임 CIO 선임 과정에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의 개입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다.

김훈길 연구위원은 “한국과 일본의 경우 연금은 ‘못 벌어도 좋으니 잃으면 안 된다’는 이유로 채권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꾸려가고 있는데, 이런 포트폴리오가 기대만큼 안전하지 않다는 게 수익률로 증명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연구위원은 “짧게는 몇 달, 길게는 1, 2년을 투자하는 투자자에겐 출렁임이 큰 주식이 위험 자산일 수 있지만 10~20년 장기 투자로 본다면 위험 총량은 현저히 낮아지며 확실히 채권보다 주식이 수익률이 높다”며 “자체 연구 결과 수십 년을 보는 장기 투자의 경우 주식 7대 채권 3, 또는 6대 4의 비율이 운용 효율성과 안전성이 극대화되는 것으로 나타난 만큼 국민연금도 주식, 특히 해외 주식의 비중을 늘리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상반기 수익률 0%대를 기록한 게 문제가 아니다. 5년 또는 10년 장기 수익률에서 국민연금은 다른 연기금에 비해 높지 않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하락하는 추세라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남 연구위원은 “상대 수익률이 높은 서구권 연기금처럼 현행보다 위험 자산 비중을 높이되 그 전에 선결 과제가 있다”며 “제대로 검증된 목표 수익률을 세운 뒤 그에 맞춰 위험ㆍ안전 자산 비중을 조정하고, 운영 체계도 효율화하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투명성ㆍ독립성 문제도 해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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