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무시한 채 호기심만 자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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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9일 저녁 방영된 K-2TV 『드라마 게임』 「새벽에 뛴다」(극본 양근승·연츨 고성원)는 시청률만을 의식한 프로그램이 얼마나 비도덕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중년의 택시기사가 자기 차에 치였던 한 여성의 의도된 유혹에 넘어가 오랫동안 함께 고생한 부인을 배반하고 가정불화를 일으킨다는 것이 드라마의 줄거리였다.
이 드라마는 얼핏보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다루고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택시기사로 대표된 직장인들이 겪고있는 무수한 사회적 갈등은 제쳐놓고 극히 예외적인 상황을 설정한 뒤 이를 일반화시키고있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스토리가 도입된 이유는 간단하다.
가정생활을 파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외도는 부담 없는 쾌락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바탕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 스토리는 현실의 일부분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현상도 아니고 더구나 수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론할만한 어떤 쟁점도 가지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이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상식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내용을 토론의 주제로 내세운 것은 완성도와 예술성을 높이기보다는 대중들의 건전한 정서와 윤리를 무시하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상업주의적 발상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드라마를 보고 좌담에 참가한 사람들은 『얘기로만 듣던 내용을 보니까 이런 사람이 있어서는 정말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다』(한국부인회 법률상담실장) 등 하나마나한 얘기를 주고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문제점은 비윤리적인 모습으로 쉽게 허물어지고 마는 인물에 하필이면 택시기사를 등장시켰느냐는 점이다.
만일 택시기사 집단의 사회적 신분과 판단력, 지적수준을 낮게 평가해 이 같은 인물설정을 했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은 열악한 근무환경, 상대적인 저임금과 사고의 위험에 시달리면서도 건강하게 살고있는 모든 택시기사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말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웠다.

<이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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