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면 젊어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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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3세인 양재혁씨에게 나이가 단절을 의미하던 때가 있었다. 25세 때 국어교사로 교편을 잡았던 그는 1998년 65세가 됐다.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는 아직도 정력이 넘쳤지만 정년이란 제도는 그를 직장에서 밀어냈다.

연금생활자로 경제적 궁핍함을 면할 수 있었지만 은퇴 후 생활엔 고통이 적지 않았다.

"노는 게 신나는 것도 고작해야 1~2년입니다. 평생 일을 해왔고 당장도 할 수 있는데 아무 일 없이 지낸다는 기분은 당해 본 사람만 압니다. 위축되고 초조해지고 초라해지고…"

그는 답답했던 그 때의 돌파구를 이웃에 대한 봉사에서 찾았다. 목동아파트 13단지 주민인 그는 정년 퇴직 후 양천구 노인종합복지관.신목종합복지관 등 시설에서 글 모르는 어르신을 상대로 국어 강의를 했다.

그러던 양씨가 같은 동네에 자신과 같은 이웃이 꽤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2001년이다 우연한 기회에 양천구청에서 운영하는 자원봉사센터를 찾은 후였다.

"비슷한 사람들이 많이 모였어요. 모두들 퇴직은 했지만 일할 힘이 있고 의지도 있었습니다. 전직 공무원도 있고 사업가나 직장인도 있었지요.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로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며 나름대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서로를 알게 된 어르신들은 이왕이면 함께 봉사활동을 하자고 뜻을 모았다. 그렇게 출범한 것이 상록봉사단이다. 약 30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상록봉사단은 6년째 양천구 지역 어르신들의 봉사단체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양씨는 이 모임이 출범한 이후 지금까지 회장을 맡고 있다.

상록봉사회의 대표적 활동은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정신지체장애인 생활시설 우성원에서의 봉사다. 이 봉사는 매달 한차례씩 회원 정기모임 때 하는 행사다. 모든 회원이 참가한다. 장애인들의 일터인 이곳에서 아침부터 하루 종일 그들을 도와 쇼핑백을 만든다. 여기서 나온 수익금은 함께 작업하는 장애인들에게 돌아간다. 장애인들의 목욕도 돕고 식사도 돌본다. 상록봉사회 출범 후 지금까지 꾸준히 이 행사에 참가했다는 노재훈(82)씨는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만 눈에 밟혀 다른 일이 있어도 이 모임만은 빠지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어르신들의 봉사활동은 이뿐만 아니다.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의 장애인 일터에서는 매일 10여명의 회원들이 우성원에서와 같은 근로 봉사를 한다. 수산나의집 하은장애아시설등 양천구에 있는 장애인 시설과 신월동의 청소년가장 일터, 이대목동병원과 40여곳의 지역 경로당에서도 회원들이 조별로 봉사활동을 한다.

양천종합복지관 일터에서 6년째 근로 봉사를 해온 안소강(63)씨는 "딸 둘이 출가한 후 일주일 내내 이곳에서 소일을 해왔다"며 "사무실 경비를 서는 남편도 쉬는 날에는 함께 이곳에서 일한다"고 말했다. 안씨는 이 모임에서 몇 안되는 2000시간 이상 봉사자 중 하나다.

어르신들의 봉사활동이 단순 노동에 국한 된 것은 아니다. 수지침 놓기. 기공및 단전호흡.발맛사지.합주단 연주.통역봉사. 문화재 해설사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다양한 영역에 망라돼 있다.

전역 군인이라는 이희봉(70)씨는 은퇴 후 배운 수지침으로, 음악인인 박선애(60)씨는 현악단 운영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가을엔 양천구의 가로수인 감나무에서 감도 수확하고 안양천 고수부지에서 배추.무등 농작물을 재배해 불우이웃에게 김치도 담가 준다.

꾸준히 봉사활동의 범위를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나도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겠다"라는 어르신들의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30명으로 시작한 회원은 이제 두배가 넘는 70여명이 됐다.

양씨는 "일을 하면 젊어 진다"며 "이웃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위해 일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많은 이웃들이 함께 젊음을 나누자고 동참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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