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날 듯…월동채비 부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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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전두환·이순자씨 부부가 백담사에 은거한 지도 7일로 보름째. 전씨 부부는 이날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에 참석, 1백 8배를 한 뒤 목탁소리에 맞춰 천수경을 외며 또 하루를 맞았다.
그러나 고요한 내설악의 산사는 일반인의 통제 속에 삼엄한 경비와 매서운 한파로 음산함이 가득했다.
지난달 23일 서울 연희동 사저를 떠날 때 눈시울을 적신 이씨는 신경쇠약증세로 앓고 있으며 담배마저 끊은 전씨는 수염도 깎지 않은 초췌한 모습으로 변했다.
특히 지난 2일 국회 5공특위에서 보낸 오는 10일 청문회 출석요구서를 받은 다음날 의사가 왕진까지 왔다 갔다.
사찰측은 『최근 영하 16도를 오르내리는 밤추위가 계속된데다 먹고 자는 것도 예전 권좌의 시절과는 달라 산사생활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것 갈다』며 『전씨는 양쪽 볼이 쏙 들어가 꺼칠한 모습』이라고 전했다.
전씨 부부의 산사 일과도 그동안 많이 달라졌다.
처음 1주일간은 예불시간 외는 문밖 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식사도 스님들과 마찬가지로 된장찌개·김치·산나물·고춧잎·깻잎 등 다섯 가지 반찬에다 절에서 내준 광목이불을 덮고 오후 9시면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찬거리를 사러 나가는 경호원 등의 나들이가 잦아졌고 월동장구도 들어왔으며 간이변소와 객사방의 겨울채비도 새로 했다.
객사방 뒤뜰에는 앉음새가 편안하게 생긴 의자 2개를 갖다놓고 아침 산책 후 전씨 부부가 나란히 앉아 햇볕을 쬐며 40여분 가량 묵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렇듯 전씨 부부의 체류가 길어지자 절 주변에 경비초소가 6개로 늘어났고 경찰 경비도 사찰반경 2백m에 20m 간격으로 전경을 배치하는 등 일반인은 얼씬도 하지 못해 절이 마치 「요새」가 된 느낌.
『대학입시를 치를 아들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헛걸음만 했어요.』
6일 경북 안동에서 왔다는 송모씨(42·여)는 『불공까지 막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불평하며 발길을 돌렸다. 백담사는 매년 입시철이면 4∼5일 간격으로 20여명의 신도들이 전국에서 찾아와 입시불공을 드리는 이름난 곳.
전씨 부부의 은거로 올해는 백담사의 입시불공길이 막혀 사찰측도 말 못하는 피해를 적지 않게 보고 있는 셈. 설악산 국립공원 백담분소도 마찬가지.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15일간 공원 입장수입이 전무한 상태.
이런 가운데 경호경찰과 사찰측은 오는 15일 산불예방 입산통제가 풀리면 일반 등산객들의 출입을 막을 수 없고 기습 시위대가 쉽게 들이닥칠 수 있어 사찰이 시위장으로 변할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에도 지난달 27일 춘천·원주지구 재야인사·대학생 2명이 백담분소에서 원정시위를 벌인 것을 비롯, 5차례나 원정시위대가 백담사로 오다 6일에는 저지하는 경찰과 충돌, 부상자까지 났다.
겨울을 이곳에서 보내야 할지 아니면 오는 15일전에 떠나야 할지 두 갈래 갈림길에서 마땅한 제2의 장소마저 없어 전씨 경호 측근은 날이 갈수록 고심에 싸여있다. 【백담사=권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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