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걸객원의학전문기자의우리집주치의] 과자 기피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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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콘택트렌즈 세척액이 눈병을 일으킨다는데 사용해도 되나요'.

최근 언론 보도를 접한 독자들이 저에게 흔히 묻는 질문입니다. 과자의 식품첨가물이 아토피를 유발한다는 TV 프로그램과 모 유명회사의 콘택트렌즈 세척액이 진균성 각막염을 일으킨다는 기사가 잇따라 보도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곤란하다고 믿습니다.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선 과자 이야기를 꺼내 보지요. 실제 TV 화면을 보면 과자를 먹고 증상이 악화한 어린이들이 생생하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자체 임상시험을 통해 과자 속 식품첨가물이 원인인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진 옳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과자를 먹이지 말아야 하느냐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원인'과 '악화 인자'의 구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름이 원인이라면 성냥불은 악화 인자에 해당합니다. 기름이 없다면 성냥불을 그어도 불이 나지 않습니다. 아토피의 원인은 잘 모릅니다. 의사들도 갸우뚱합니다. 그러나 악화 인자는 제법 규명돼 있습니다. 식품첨가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에 좋다는 우유나 생선, 콩도 대표적 아토피 유발식품입니다. 수백 가지가 되며 이들을 모두 회피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연환경이 좋다는 호주나 뉴질랜드에서도 아토피는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식품첨가물이 아토피를 유발하는지 조사에 나섰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토피가 없는 어린이라면, 아토피라도 경험상 과자와 증세가 관련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과자 먹기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콘택트렌즈 세척액도 마찬가지입니다. '통계적 연관성'과 '인과관계'의 문제입니다. 수년 전 발바닥 티눈이 많은 사람이 오래 산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바 있습니다. 과연 티눈이 수명 향상에 기여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티눈과 수명은 통계적 연관성은 있지만 인과관계는 아닙니다. 숨겨진 변수는 운동입니다. 운동을 많이 하면 오래 살지만 티눈도 잘 생깁니다. 티눈 자체는 수명과 무관한 것이지요.

콘택트렌즈 세척액 사건 역시 아직은 통계적 연관성에 머무른 수준입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 역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으며 제조회사 역시 제품 회수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문제가 된 각막염의 원인균은 미국 플로리다 등 열대지방에 흔한 종류로 우리나라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사용 중인 세척액을 공연히 버릴 필요는 아직 없다고 하겠습니다.

홍혜걸 객원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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