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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스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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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자사(一字師)'란 말이 있다. 한 글자를 배워도 스승이라는 얘기다. 당나라 때의 시인 1151명에 관한 일화와 평론을 모아놓은 '당시기사(唐詩紀事)'에 나오는 말이다.

제기라는 승려가 시인 정곡에게 이른 봄에 핀 매화를 소재로 한 자작시 한 편을 보였다. 정곡은 시행 중 '몇 가지 매화가 피었네(數枝開)'라는 구절을 '한 가지 매화가 피었네(一枝開)'로 고쳤다. 그러자 눈도 녹지 않은 가지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조매(早梅)의 정취가 확연히 살아났다.

제기는 맨발로 마당에 내려가 "스승을 뵈옵니다"하며 큰절을 올렸다. 이렇듯 옛사람들은 스승을 깍듯이 섬겼다. 율곡 이이는 "스승을 대할 때 목 윗부분을 보아서는 안 되고 스승 앞에서는 개를 꾸짖어도 안 되며 스승과 겸상할 때는 칠 푼만 먹고 남겨 배부르지 말아야 한다"고까지 가르쳤다.

스승을 공경하는 대신 선택할 때 신중을 기했다. 스승을 잘못 만나면 도리어 학문이나 행실에 손상을 입는다는 경계였다. 퇴계 이황은 후손들에게 이렇게 일렀다. "한 글자를 배워도 가르친 이의 덕을 더불어 배우게 되는 것이니 먼저 스승 될 이의 처지와 덕행을 보라.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고 배움에 넉넉함이 있거든 스승으로 택해 아들과 손자를 가르치라."

오늘날 스승은 뺑뺑이로 정해진다. 그래선지 극진히 받들지도 않는다. 노동자 권리를 주장하는 교사들이 별스럽지 않은 세상이 됐다. 하지만 노동자라 해서 스승이 못 되란 법은 없다. 그런 예를 프랑스에서 봤다.

한 공립초등학교 교사가 가정통신문을 보냈다. "내일 파업 참가로 수업을 할 수 없으니 자녀를 등교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파업 때문에 수업을 빼먹다니. 한국 학부모라면 입에 거품을 물 일이다. 그런데 학기 말에 그 교사가 학교 게시판에 편지를 써붙였다.

"학부모님들의 선물에 감동했습니다. 알프스 산악지도는 즐거이 받겠습니다. 꼭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함께 주신 쌍안경은 과분한 물건이군요.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것 같으니 학급 비품으로 남겨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처우 개선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이면서 분에 넘치는 촌지는 거부하는 현대판 스승의 모습 아닌가. 프랑스 교사라고 모두 그런 건 아닐 테고 한국에도 더욱 훌륭한 교사가 많을 터다. 하지만 몇몇 '선생 김봉두'가 물 흐린 탓에 해마다 스승의 날 닫혀야 하는 교문을 바라보며 쓴웃음 지을 참스승들이 안타까워 푸념 한번 해봤다.

이훈범 week&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