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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진 중동 경제 "돈 쓰자" 개발 열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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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두바이의 국제금융센터 공사 현장. 중동 자금의 관문이 되겠다는 뜻에서 개선문 모양으로 만든 본관 뒤로 10여동의 부속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다. 두바이=김광기 기자

'오일 머니 4000억달러를 잡아라.'

고유가로 세계 경제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석유의 보고인 중동 지역 경제는 쏟아져 들어오는 오일 머니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등 걸프 연안 6개 산유국의 지난해 석유 판매수입은 330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2002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불어난 규모. 올해는 40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중동 국가들은 급증하는 오일 머니를 미래의 석유 고갈에 대비한 각종 개발 사업과 산업 다각화에 쏟아붓고 있다. 1970년대 고유가 시절 소비 위주로 흥청망청 썼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각국이 경쟁적으로 사업을 벌여 결국 버블을 초래할 것이란 경고의 소리도 나온다.

◆ 오일 머니의 관문 두바이=UAE의 두바이는 오일 머니의 최대 관문으로 통한다. 중동 각국은 물론 러시아 등 독립국가연합(CIS)의 오일 머니까지 이곳을 거쳐 투자처를 찾아 나선다. 두바이의 중앙로인 세이크 자에드 로드에 2004년 세워진 두바이국제금융센터(DIFC)는 파리의 개선문을 본 뜬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국제 자금이 모였다가 다시 퍼져나가는 출입문이라는 의미를 형상화한 것이다.

DIFC의 압둘라 모하메드 공보국장은 "지난해 5월 한국 수출입은행이 이곳에 40번째 금융회사로 들어왔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180개 금융회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에 투자됐던 아랍계 자금이 9.11 테러 이후 속속 중동으로 회귀하면서 두바이를 주요 투자처로 삼고 있는 상황이다. DIFC에는 현재 HSBC와 스탠다드차터드 등 은행은 물론 소버린자산운용과 같은 사모펀드와 헤지펀드들이 오일 머니를 잡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은 두바이를 거쳐 투자되는 오일 머니가 한해 수백억달러에서 최대 1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두바이에 건설되고 있는 세계 최고층(160층, 800m 계획) 빌딩 '버즈 두바이'와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팜 아일랜드' 등 각종 부동산 개발 사업도 오일 머니 덕분에 진행되고 있다. 두바이 정부 산하 개발회사 타트웨어의 CEO인 사에드 알 문스픽은 "두바이 개발 자금의 70% 가량이 중동 산유국들로부터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두바이는 오일 머니를 활용해 물류.관광.쇼핑.금융 인프라를 계속 확충하면서 중동의 경제 허브로 발돋움하고 있다.

◆ 주변 아랍국들의 추격=중동 주변국들도 두바이를 벤치마킹한 개발 사업에 잇따라 뛰어들고 있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도 리야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50만평 규모의 금융자유지역을 만들 계획이라고 9일 발표했다. 두바이 등으로 빠져나가는 국내 자금을 묶어두고 거꾸로 주변국 자금까지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이다.

카타르는 110억달러를 들여 두바이에 버금가는 관광 및 고급 주거 단지를 세울 계획을 최근 내놓았다. UAE의 최대 도시인 아부다비는 석유화학과 중공업 중심의 대규모 산업단지를 만드는 한편 8만평 규모의 해상 레저단지인 '행복의 섬'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과거 중동의 금융 중심지였던 바레인도 금융 인프라를 정비해 오일 머니가 되돌아오도록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자산 거품에 대한 우려도=각국이 석유 고갈에 대비한 산업 다각화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고 있지만, 중동 전체적으로 보면 과잉 투자로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 전조인지 올 들어 두바이와 사우디 등 중동 주요국의 주가는 50% 정도씩 폭락했다. 이 때문에 주가 폭락에 이어 부동산 거품까지 꺼지면 중동 경제가 적잖은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관건은 역시 국제 유가다. 코트라의 연영철 두바이무역관장은 "국제 유가가 떨어지면 중동 경제가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하지만 앞으로 3~4년 정도는 유가가 고공 비행을 지속할 것이란 게 이곳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라고 전했다.

두바이.아부다비=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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