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결제…기술제공…해외동반진출…중기 가려운 곳 긁어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3면

신헌철(오른쪽에서 다섯째) SK㈜ 사장이 울산공장에서 협력업체 대표들과 상생을 다짐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방향지시등과 창문 개폐용 스위치 등의 차 부품을 생산하는 대성전기는 이달부터 자금 운용이 한층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납품처인 현대자동차가 이달부터 납품 대금을 전액 현금으로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대성전기는 연간 2200여억원어치의 납품 물량 중 수출용 부품(약 1200억원)은 현금을, 내수용 부품(약 1000억원)은 60일짜리 어음을 받아왔다. 이 회사 양한주 상무는 "현금으로 받으면 어음 할인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유동성도 좋아져 경영에 큰 도움이 된다"며 "우리도 이달 말부터 협력업체들에게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해 혜택을 나눠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SK㈜ 협력사인 대지금속은 최근 경유자동차용 매연저감장치를 개발하는 데 SK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SK는 개발에 필요한 노하우를 제공하는 한편, 금형을 만들어 대지금속에 제공했다. 완제품을 납품받기 시작한 뒤 대금을 모두 현금으로 주는 것은 물론이다.

대기업들이 잇따라 내놓고 있는 상생방안이 중소기업들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대기업의 상생 노력은 원자재값 폭등과 유가 인상, 환율 급락이라는 3대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중소기업의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금 결제 등 유동성 지원에 초점을 맞춰왔던 상생방식도 최근엔 특허 등 기술 제공, 해외 진출 지원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 자금 압박 줄고=요구르트.청국장 발효기를 만들어 홈쇼핑과 유통업체에 납품하는 엔유씨전자는 요즘 납품물량(연간 300여억원)의 60%가량을 현금으로 결제받고 있다. 2002년 납품을 처음 시작하던 때와는 정반대다. 당시만 해도 납품대금의 70~80%를 어음이나 구매카드로 받아 적게 잡아 납품액의 3% 이상은 할인료나 수수료로 부담해야 했다. 이 회사 김용일 이사는 "최근 3~4년 새 대기업의 인식이 많이 달라지면서 홈쇼핑은 100%, 대형 유통업체나 할인점은 절반 이상 현금 결제를 해주고 있다"며 "주거래처인 GS홈쇼핑은 인터넷을 통한 입소문 마케팅과 웰빙 트렌드에 맞춘 판매 전략 수립 등을 적극 도와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대기업들이 주력하는 상생 방안은 중소기업의 가장 큰 고민인 자금 압박을 풀어주는 일이다. GS칼텍스는 중소기업에 전액 현금 결제를 하고 있다. 협력업체가 납품한 물건에 문제가 없으면 일주일 안에 거래대금을 100% 현금으로 주고 우수 협력사에는 거래대금의 30%를 선급금으로 주기도 한다. 포스코는 2004년 말부터 중소기업에 대한 전액 현금 지불 제도를 시행, 지난해 3조2000억원을 지급했다.

대기업과 은행이 협력해 중소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네트워크론도 활성화되고 있다. SK텔레콤에 벨소리와 동영상 등을 공급하고 있는 텔미정보통신은 최근 하나은행으로부터 15억원의 기술개발자금을 대출받았다. 이 회사 김남윤 상무는 "일반 대출을 받았다면 건물.공장 담보나 보증서 등 까다로운 대출조건을 요구받았겠지만 네트워크론 덕에 그동안의 납품실적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 있었다"고 했다. 네트워크론은 KT와 롯데마트 등도 실시하고 있다.

◆ 기술개발 여력 생겨=포스코 협력업체인 우진은 지난해 스테인레스 용광로에서 자동으로 시료를 채취하는 장비를 개발한 뒤 1억9000만원의 성과보상금을 받았다. 수작업으로 시료를 채취하던 직원 4명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게 된 포스코가 절감액 전부를 보상금으로 준 것이다. 한정휘 우진 기획조정실장은 "새 장비를 납품해 연간 3억원가량의 신규 매출이 발생했고 특허도 낼 수 있었다"며 "포스코가 도와준 게 고마워 얼마 전 개발 장비를 공급해 달라는 외국 철강회사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LG전자 협력사 오알켐은 2000년부터 LG전자의 기술지원을 받아 200여 종에 이르는 전자기판용 화학약품 중 80여 종을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협력의 결과 전자기판의 제조원가를 30% 이상 낮출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이 회사는 2003년 아예 LG전자로부터 전자기판의 동도금 라인 일체의 시설과 관리권을 넘겨받았다.

◆ 해외 진출도 도움=SK텔레콤 협력업체인 넥스모어시스템즈와 벨웨이브는 휴대전화로 자녀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인 '아이키즈'를 최근 네덜란드.호주.영국 등에 수출했다. 이들 회사는 기술 개발 및 판매 과정에서 SK텔레콤의 시험장비를 빌려 쓰고 출장비와 마케팅 비용까지 지원받아 70억원의 신규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석유화학 공장에서 쓰이는 열교환기와 배관을 만드는 티에스엠텍은 2003년 말 삼성석유화학에 90억원 규모의 설비를 납품하면서 해외 수출 길이 열렸다. 삼성석화의 지분 50%를 갖고 있는 BP의 협력사로 자동 등재되면서 BP 계열사인 대만 CAPCO, 중국 BP주하이, BP말레이시아 등에서 잇따라 주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박대주 티에스엠텍 전무는 "삼성석화가 우리 제품의 장단점과 보완할 점 등을 세세히 지적하고 개선 방안까지 제시한다"며 "해외 콘퍼런스 때 우리 회사 자료를 같이 배포해주는 등 해외 마케팅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환 이화여대(경영) 교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은 비용절감에 초점을 둔 초기 단계"라며 "기술개발과 해외진출 지원을 강화해 서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가치창출형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현철.임장혁 기자

*** 바로잡습니다

5월 15일자 E13면 사진설명 중 신헌철 SK㈜ 사장 위치는 왼쪽에서 다섯째가 아니라 오른쪽에서 다섯째로 바로잡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