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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협상 평행선 "美 관심은 엄청난 증액 뿐" 트럼프 공언 현실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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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서초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한미 방위비협상 제4차 회의에서 장원삼 우리 측 한미 방위비협상대사와 미국 측 티모시 베츠 한미 방위비협상대사가 회의 시작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 6월 서초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한미 방위비협상 제4차 회의에서 장원삼 우리 측 한미 방위비협상대사와 미국 측 티모시 베츠 한미 방위비협상대사가 회의 시작 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미가 2019년부터 적용될 10차 방위비 분담금 협정(SMA)을 위해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미 측이 한국의 분담비 대폭 인상을 요구하면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국’을 지목하며 공언했던 대로다.

외교부 당국자는 27일 기자들과 만나 한국 측 분담액에 대해 “양 측이 최초의 입장에서 입장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과정이라고만 하겠다. 아직도 입장 차는 상당하다”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 중 한국이 분담하는 몫으로, 올해 한국 측 분담 액수는 약 9602억원이다. 한·미는 지난 22~23일 서울에서 올 들어 여섯번째 회의를 열고 주요 쟁점을 논의했다.

미 측은 총 방위비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항목까지 제안했다. 원래 방위비는 ▶주한미군에서 근로하는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 ▶군사시설 건설비 ▶군수지원비 등 세 분야로 나뉘는데, 미 측은 이에 더해 ‘작전 지원 비용’이라는 항목을 신설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전략자산의 한반도 주변 전개 비용을 포함하자는 것이다. 기존 항목만으로는 대폭 증액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새로운 항목을 고안해낸 것이다. 이에 한국은 “방위비는 원래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된 비용에 대한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정부는 이에 ‘간접비용’ 등을 강조하며 한국의 기여를 부각하고 있다. 한국국방연구원에 따르면 2015년 기준 한국이 부담한 방위비 분담금은 약 9300억원이지만, 간접지원액과 한시적 비용 등을 모두 합치면 주한미군 주둔을 위해 한국이 내는 비용은 5조 4000억원 상당이었다. 간접지원액에는 관세와 내국세 등 세금 면제 금액(약 1100억원)과 카투사 병력 지원비용(약 936억원), 상하수도 및 전기료 감면액(91억원) 등이 포함된다. 한시적 비용은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 비용으로, 약 2조 60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미 측은 한국의 기여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방위비 분담금 총액에 포함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관련 사정에 밝은 소식통은 “현재 양국 간에 여러 주요 쟁점에서 견해차가 크지만, 미국 협상단의 최대 관심은 총액”이라며 “사실 총액에서만 어느 정도 요구가 맞춰진다면 항목 부분에서는 꼭 주장대로 관철되지 않아도 양해가 될 수 있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문제는 지금 미 측 협상단이 제시한 액수도 엄청난데, 이 액수가 트럼프 대통령이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 액수인지가 확실치 않다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한국이 방위비를 더 분담하지 않으면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했고, 지난해에도 “동맹국이 주둔 미군 방위비를 100% 부담하지 않으면 (자신을)스스로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은 약 2조원으로 추산되며,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대로라면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두 배로 오른다.

정부가 박근혜 정부 때였던 2014년 맺은 9차 SMA에 하자가 있다고 문제 삼은 것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정부는 당시 합의에서 미군의 도·감청용 민감특수정보시설(SCIF) 건설을 위해 한국이 추가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약정서가 국회에 늦게 제출된 것을 문제삼았다. 분담금 협상 과정과 사용처에 대한 투명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런만큼 정부는 이번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투명성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미 측은 이를 주한미군 사령관의 재량권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으며, 일단 액수가 정해지면 용처에 대해 일일이 한국 정부의 승인을 받을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라고 한다.

정부가 9차 SMA를 비판하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의 공평한 분담금’을 이번 방위비 협상의 원칙으로 정한 만큼 총액을 둘러싼 한·미 간 줄다리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비준 동의에 걸리는 기간 등을 고려하면 오는 9~10월에는 협상을 타결해야 2019년 1월 1일부터 곧바로 새 협정이 발효될 수 있지만, 그 안에 양 측 간 이견이 좁혀질지는 미지수다. 외교부 당국자는 “과거 방위비 협상 때도 총액 문제로 한·미 간 이견이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미국 (국내)상황도 있고 해서 더욱 첨예하게 드러나는 것 아닌가 싶다”며 “협정의 공백이 없도록 노력하겠지만, 시간에 쫓겨 내용까지 희생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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