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미인' 현수아도 아프다…'강남미인'이 가볍지 않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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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금토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현수아(조우리 분)는 강미래(임수향 분)에게 묘한 적대감을 품고 있다. [사진 JTBC]

JTBC 금토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현수아(조우리 분)는 강미래(임수향 분)에게 묘한 적대감을 품고 있다. [사진 JTBC]

웹툰 원작의 JTBC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이하 강남미인)'은 뭇 웹툰 원작드라마처럼 경쾌하다. 하지만 결코 가볍지는 않다.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묵직한 내용이 전해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강남미인’은 외모 지상주의라는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이들이 그 굴레를 깨버리는 이야기다. 딱딱한 알을 깨고 날개를 활짝 펴는 성장 스토리에는 언제나 가벼이 흘려볼 수 없는 힘이 담겨 있는 법. 그래서 도경석과 강미래의 풋풋한 사랑만큼, 이들의 성장 스토리 또한 ‘강남미인’의 볼거리가 될 예정이다.

이 드라마가 전반에 걸쳐 화두를 던지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외모 지상주의’다. 우리네 현실보다 더, 아니 어쩌면 우리네 현실처럼 드라마 속 인물들은 알게 모르게 외모 지상주의라는 족쇄에 자유롭지 못하다. 강미래(임수향 분)는 그 직접적인 피해자다. '강오크'라는 별명을 중고교 시절 내내 들어야 했고, 자신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죄가 되는 경험을 했다. 얼굴 때문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인 ‘향수’를 좋아하게 됐지만, 주위 사람들은 그 ‘향수’도 과분하다며 조롱했다.

'외모 지상주의' 직시하며 묵직한 물음 던져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그렇기에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형 수술을 감행해 얼굴을 바꿨다. 그래서 ‘외모 지상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깼냐고? 아니다. 성형수술은 이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피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뿐, 그 자신이 당연하게 받아왔던 핍박은 오히려 외모 지상주의를 내재화시켰다. 마주치는 사람을 속으로 얼굴로 평가해온 강미래의 모습은 이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럼에도 미래는 성장하고 있다. "못생겼다"고 폭력을 가하던 이들은, 예뻐진 후 ‘강남미인’이라는 새로운 폭력을 가한다. 그래서 강미래는 여전히 의기소침하다. 하지만 성형 후 처음 겪은 폭력적 상황에서도 미래는 과거처럼 당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강남미인'이나 '성괴(성형괴물)'니 험한 말을 내뱉으며 미래를 괴롭히던 찌질한 선배를 가방으로 후려친 것처럼 말이다. 중학교 동창 도경석(차은우 분)은 미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찌질한 선배를 따끔히 혼낸 것도, 친한 듯 접근한 뒤 미래를 곤란하게 하며 속으로 웃음 짓는 현수아(조우리 분)에게 “재밌냐”고 내친 것도 경석이었다.

성형 전 강미래 모습 안 보여주는 꿋꿋함

강남미인

강남미인

그런 경석은 외모 지상주의에 스스로 물든 미래에게 따끔히 말하면서, 미래의 아픔도 이해한다. ‘못 생겨서 고통받았던’ 미래도, ‘예쁜 것은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경석도 공기처럼 퍼져 있는 외모 지상주의로부터 자신이 완전무결하지 않음을 확인한다. 존재의 확인은 곧 극복해야 할 대상을 파악했다는 의미. 언젠가부터 외모에 평가를 매기지 않는 미래의 모습은 그래서 자연스럽다.

이 드라마는 미래가 과거를 회상하는 모습에서 성형 전 미래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뒷모습을 비추거나 특정 부위만 확대하거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린다. 외모 지상주의에 동조하지 않겠다는 듯, 못 생김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다는 듯 꽤 자주 등장하는 과거 회상인데도 꿋꿋이 얼굴을 가리는 놀라운 감각을 발휘한다.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이 드라마는 성형 수술 전 미래의 과거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사진 JTBC]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이 드라마는 성형 수술 전 미래의 과거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사진 JTBC]

자연미인 현수아는 그저 악역? 후반부 이끌 주인공?

미래와 경석의 풋풋한 연애가 드라마 초반을 이끌었다면, 드라마 후반을 이끌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는 수아의 성장 스토리다. 고친 곳 하나 없는 수아는 어딜 가나 주목받으며 ‘퀸카’ 소리를 듣는다. 외모 지상주의의 수혜자 아니냐고 여길지 모르지만 수아 또한 피해자다. 과거의 아픔(드라마에선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은 ‘외모’ 때문에 너무나 쉽게 극복됐고, 자연스럽게 수아는 외모를 중시하게 됐다. 미래에게 묘한 적대감을 가지는 이유도, 어쩌면 유일할지 모르는 자신의 '권력'에 미래가 도전했기 때문이다. '강남미인'이 수아를 단순한 악역으로만 활용한다면 그저 그런 드라마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27일 시청률 2.9%(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한 ‘강남미인’은 25일 10회 방송에서 5.0%를 기록했다. 자체 최고 시청률이다. 이날 방송에서 수아는 “예쁨이라는 축복을 받지 못한 이들이 성형 수술을 해서 결국 타고난 수혜자들이 피해를 본다”며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처음으로 미래에게 보여줬다. 앞서 말했지만, 존재의 확인은 극복의 선행 조건이다. 이 장면은 이 드라마가 수아를 그저 그런 '악역'으로만 남겨두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수아가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기대되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공희정 대중문화평론가는 "'강남미인'은 약자에 대한 연민을 담으면서도 누구나 공감할 외모 지상주의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풋풋한 사랑과 공기처럼 퍼져 있는 외모 지상주의, 그리고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성장스토리. JTBC ‘강남미인’이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유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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