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사진전문기자의네모세상] 청송 주산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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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숲이요, 숲은 물인가 보다. 산그늘 짙게 드리운 두메 저수지인 주산지는 또 하나의 세상을 오롯이 품었다. 잔가지마다 연초록의 새잎을 틔운 숲의 신록도, 물속에 뿌리박은 채 굽고 휜 왕버들도, 이따금 자맥질로 피라미를 채는 청호반새의 고운 깃털도 물그림자로 수면에 고스란히 비친다. 마주 보고 살면 서로 닮아간다더니 어느새 숲과 물은 하나로 닮았나 보다.

주산지는 주왕산 자락을 휘돌아 내려온 물을 가둬 모은 길이 100m, 너비 50m 남짓의 조그만 호수다. 하지만 그것을 보듬은 숲과 산이며 흐르 듯 지나는 구름은 물론이거니와, 돌고 도는 계절마저도 넉넉히 잠긴다. 봄엔 연초록 신록을, 여름엔 짙푸른 녹음을, 가을엔 울긋불긋한 단풍을, 겨울엔 하얀 비움을 담아내니,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여기서 탄생한 것도 숙명인 듯하다.

주산지에서 거울처럼 깨끗한 반영을 잡으려면 이른 새벽 시간을 택하는 것이 좋다. 해가 뜨면 바람이 불고 물결이 일어 반영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적당한 물결은 물감을 덧칠한 듯 아련한 반영을 보여주기도 한다. 주산지는 풍경을 좋아하는 사진가들의 메카와도 같은 곳이다.

특히 새잎이 돋아나 신록이 눈부신 요즘은 평일이라도 100 명은 족히 넘는 사진작가들이 찾아든다. 카메라 삼각대를 설치할 수 있는 곳이면 빈틈없이 자리 잡고 물그림자를 지켜보거나 한그루 왕버들에 집중하기도 하며, 둥글게 퍼져나가는 물둘레를 기다리거나 산 그림자 아스라이 내려앉은 저수지를 폭넓게 조망하기도 한다. 수백의 사진가들이 하나의 대상을 보고 있지만 카메라를 통해 담아내는 세상은 하나같이 다르다.

Canon EOS-1Ds MarkII 100mm f11 1/4초 Iso100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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