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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세상] 굿네이버스 이일하 이사장 “전문적 대북 구호 필요한 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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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일하 이사장이 지난 7일 서울 영등포 사무실에서 대북 사업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이일하 이사장이 지난 7일 서울 영등포 사무실에서 대북 사업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북한은 후원금 몇만 달러가 간절한 상황이 아닙니다. 전문 구호 분야를 개발해야 합니다.”

“남북 화해는 평생의 신념 #대북 지원 절대 끊을 수 없어” #목장 세운 마을 몰라보게 변화

이일하(71) 굿네이버스 이사장은 대북 지원에서 NGO(비정부 기구)가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굿네이버스는 1995년 대북 사업을 시작해 젖소 목장과 사료 공장을 세우는 등 농축산 분야에 특화된 지원을 이어갔다. 그 결과 지원을 받은 마을 수입이 5년 만에 10배로 늘어 몰라보게 변했다고 했다.

‘NGO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 이사장은 굿네이버스의 창립자다. 굿네이버스는 1991년 ‘한국이웃사랑회’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지금은 37개 국가에 303개 사업장을 거느린 글로벌 구호 단체가 됐다. 이 이사장은 한국선명회(현 월드비전) 개발국장을 거쳐 굿네이버스를 창설했다. 국제개발협력협의회 회장,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상임대표 등을 지냈고 현재 한국 NPO(비영리 기구)공동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지난 7일 영등포동에 위치한 굿네이버스 사무실에서 이 이사장을 만났다.

굿네이버스 활동을 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무엇인가.
“아동 복지 사업이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아동학대 문제에서는 정부의 예산이 부족해 민간 NGO가 돕고 있는 실정이다. NGO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아동을 돌보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일한 결과 국내에선 아동 학대와 관련해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 됐다.”
2003년 대북사업을 시작해 15년 지났는데 지향점이 있나.
“앞으로는 특화 전략이 필요하다. 의료·농업·교육 등 특수 분야에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대규모 글로벌 펀드가 북한에 들어올 것이다. 더 이상 그쪽에서 NGO 후원금 몇만 달러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NGO들은 현금 투자가 아닌 특수 분야 개발에 힘써야 한다.”
지원한 물자가 군부로 들어간다는 비판도 있다.
“우리가 구호물자 사용에 대해 모니터링하겠다고 하면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다. 교류가 끊긴 뒤 남측 NGO 자격으로는 민간 협력도 안 되니 미국 법인을 통해 지원을 이어갔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대북인권특사를 만나서 정경 분리하라는 조언도 하고, 미국이 내부 사정이 이러해서 안 된다고 답변하면 그 말을 북에 전달해주며 신뢰를 쌓았다.”
굿네이버스의 대북사업 특화 계획은.
“의료와 농업이다. 기존에 병원과 제약회사를 만들었다. 젖소목장과 사료 공장도 세웠다. 평양에서 80㎞ 떨어진 시골 마을에 젖소 목장과 우유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우유가 만들어지면 반은 팔아서 마을 자립 기금으로 쓰고 반은 아이들을 먹였다. 마을 수입이 5년 만에 10배로 늘어 몰라보게 달라졌다.”
앞으로 더 많은 NGO가 대북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나는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동안 남북경협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됐는지를 공부하고 내실 있는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북한은 NGO들의 무상 원조를 받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NGO들은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기업과 북측을 연결하는 ‘브릿지’로서 기여해야 한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 사업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도 사업 이어나가는 이유는.
“굿네이버스 창립자로서 나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화해 무드를 만드는 일이다. 대북 사업을 절대 축소하거나 끊어버릴 수 없는 이유다. 남북이 화해하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통일이라는 것은 곧 화해다. 적어도 서로 총 겨누고 전쟁하지 않는 상태가 돼야 한다. 설령 둘로 쪼개져서 살더라도 전쟁 없는 나라로 사는 편이 좋지 않겠나. 그런 차원에서 대북 사업을 바라봐야 한다. ”
NGO의 미래는.
“전 세계적으로 개인 회원만으로 성장한 NGO가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기업과 정부 예산으로 운영된다. NGO를 이끌어갈 후배들이 이런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으면 한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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