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후원금 몇만 달러가 간절한 상황이 아닙니다. 전문 구호 분야를 개발해야 합니다.”
“남북 화해는 평생의 신념 #대북 지원 절대 끊을 수 없어” #목장 세운 마을 몰라보게 변화
이일하(71) 굿네이버스 이사장은 대북 지원에서 NGO(비정부 기구)가 추구해야 할 방향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 굿네이버스는 1995년 대북 사업을 시작해 젖소 목장과 사료 공장을 세우는 등 농축산 분야에 특화된 지원을 이어갔다. 그 결과 지원을 받은 마을 수입이 5년 만에 10배로 늘어 몰라보게 변했다고 했다.
‘NGO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 이사장은 굿네이버스의 창립자다. 굿네이버스는 1991년 ‘한국이웃사랑회’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 지금은 37개 국가에 303개 사업장을 거느린 글로벌 구호 단체가 됐다. 이 이사장은 한국선명회(현 월드비전) 개발국장을 거쳐 굿네이버스를 창설했다. 국제개발협력협의회 회장,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상임대표 등을 지냈고 현재 한국 NPO(비영리 기구)공동회 이사장을 겸임하고 있다. 지난 7일 영등포동에 위치한 굿네이버스 사무실에서 이 이사장을 만났다.
- 굿네이버스 활동을 하며 가장 보람을 느꼈던 일은 무엇인가.
- “아동 복지 사업이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아동학대 문제에서는 정부의 예산이 부족해 민간 NGO가 돕고 있는 실정이다. NGO가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아동을 돌보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일한 결과 국내에선 아동 학대와 관련해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이 됐다.”
- 2003년 대북사업을 시작해 15년 지났는데 지향점이 있나.
- “앞으로는 특화 전략이 필요하다. 의료·농업·교육 등 특수 분야에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대규모 글로벌 펀드가 북한에 들어올 것이다. 더 이상 그쪽에서 NGO 후원금 몇만 달러를 간절히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NGO들은 현금 투자가 아닌 특수 분야 개발에 힘써야 한다.”
- 지원한 물자가 군부로 들어간다는 비판도 있다.
- “우리가 구호물자 사용에 대해 모니터링하겠다고 하면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다. 교류가 끊긴 뒤 남측 NGO 자격으로는 민간 협력도 안 되니 미국 법인을 통해 지원을 이어갔다. 로버트 킹 전 미 국무부 대북인권특사를 만나서 정경 분리하라는 조언도 하고, 미국이 내부 사정이 이러해서 안 된다고 답변하면 그 말을 북에 전달해주며 신뢰를 쌓았다.”
- 굿네이버스의 대북사업 특화 계획은.
- “의료와 농업이다. 기존에 병원과 제약회사를 만들었다. 젖소목장과 사료 공장도 세웠다. 평양에서 80㎞ 떨어진 시골 마을에 젖소 목장과 우유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우유가 만들어지면 반은 팔아서 마을 자립 기금으로 쓰고 반은 아이들을 먹였다. 마을 수입이 5년 만에 10배로 늘어 몰라보게 달라졌다.”
- 앞으로 더 많은 NGO가 대북사업에 뛰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
- “나는 서두르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동안 남북경협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됐는지를 공부하고 내실 있는 준비를 하라는 뜻이다. 북한은 NGO들의 무상 원조를 받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NGO들은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기업과 북측을 연결하는 ‘브릿지’로서 기여해야 한다.”
-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북 사업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도 사업 이어나가는 이유는.
- “굿네이버스 창립자로서 나의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이 화해 무드를 만드는 일이다. 대북 사업을 절대 축소하거나 끊어버릴 수 없는 이유다. 남북이 화해하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 “통일이라는 것은 곧 화해다. 적어도 서로 총 겨누고 전쟁하지 않는 상태가 돼야 한다. 설령 둘로 쪼개져서 살더라도 전쟁 없는 나라로 사는 편이 좋지 않겠나. 그런 차원에서 대북 사업을 바라봐야 한다. ”
- NGO의 미래는.
- “전 세계적으로 개인 회원만으로 성장한 NGO가 있는 곳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다른 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기업과 정부 예산으로 운영된다. NGO를 이끌어갈 후배들이 이런 환경에서 일한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으면 한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