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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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티끌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을 잊는다 하기에 산을 깎아 집을 짓고 돌을 뚫어 샘을 팠다 구름은 소 인양하여 스스로 왔다 가고 달은 파수꾼도 아니건만 밤을 새워 문을 지킨다 …공산의 적막이여 어데서 한가한 근심을 가져오는가 차라리 두견성도 없이 고요히 가져오는 오오 공산의>
만해 한룡운 선사의 시집 『님의 침묵』에 나오는 「산거」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우리 현대시사에 길이 남을 『님의 침묵』은 만해가 설악산 백담사에 있을 때 낸 시집이다. 만해가 백담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동학혁명 때문이다.
18세의 젊은 나이로 동학군에 가담했던 그는 혁명이 실패로 끝나자 시베리아 유랑을 떠났다. 그는 다시 조국에 돌아오나 관헌의 눈길을 피할 수가 없어 설악산 오세암에 몸을 숨긴다. 입산한 그는 몸을 의탁하기 위해 불목하니의 막일을 한다. 거기서 그는 불교의 심오한 진리에 심취하게 된다.
25세 때 그는 잠시 향리에 돌아온다. 부인이 산월인 것도 모른 채였다. 그는 산고를 겪는 부인에게 약을 구해오겠다고 하며 집을 나선다. 그때 만해는 『어차피 속세와 연을 끊을 바엔 철저히 끊어보자』는 생각을 한다.
그 길로 그는 백담사를 찾게 되었고, 이어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된다. 바로 첫 아들이며 외아들인 보국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귀거래사가 아닌 고별사를 내고 연희동 사저를 떠나 첫 은둔처로 잡은 곳이 백담사다.
청회색 방한복에 털모자를 눌러 쓴 그의 모습은 지난날의 권력과 영화를 한 몸에 누렸던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처연하다.
그를 만해 선사와 연결 짓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회는 적지 않을 것이다. 만해는 그 산사에서 득도의 어려움을 이렇게 읊었다.

<빈 문에 들어온 구멍 분명 있건만 창에 던져 못 나가는 미련한 벌레 백년동안 낡은 책상 뒤져봤댔자 어느 날에 큰 웃음을 웃을 날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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