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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올빼미는 오늘밤도 ‘뉴욕’으로 출근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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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10일 밤 10시 40분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2층 해외투자 영업부 사무실에서 이날 밤샘 근무 당번인 강상훈 대리(앞쪽)와 이대룡 차장이 해외주식 및 선물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사진 한국투자증권]

지난 10일 밤 10시 40분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2층 해외투자 영업부 사무실에서 이날 밤샘 근무 당번인 강상훈 대리(앞쪽)와 이대룡 차장이 해외주식 및 선물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사진 한국투자증권]

“매일 밤 뉴욕으로 출근합니다. 제 ‘쏘울’(soul)은요.”

낮밤 뒤바뀐 해외주식 담당자들 #뉴욕증시 맞춰 오후 9시 출근 #새벽 2시 점심, 아침 7시 퇴근 #미국시장 예약주문 주로 처리 #자칫하면 큰 손해 … 밤새 초긴장 #“돈 날렸다” 취객 전화 시달리고 #내부정보 캐려는 진상고객 상대도

한국투자증권 해외투자영업부의 강상훈 대리는 자신의 출근길을 이렇게 설명했다. 쏘울은 ‘영혼’ ‘마음’ ‘정신’ 등을 뜻하는 영어다. 강 대리가 주기적으로 뉴욕 증시 개장 시간에 맞춰 밤샘 근무를 하고 있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그는 3주마다 한 번씩, 일주일 동안 매일 밤 9시에 출근해 일명 ‘나이트 근무’를 한다. 그리고는 남들이 출근할 때 퇴근한다. 강 대리는 “다음 날 아침에 퇴근하러 여의도역에 가면 수백 명이 출근하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로 올라오고 있다”며 “내려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강 대리가 주기적으로 ‘밤샘 근무’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해외 주식 투자를 담당하기 때문이다. 세계 증시는 해가 지지 않는다. 한국 시각으로 오후 늦게 한국 등 아시아 증시가 문을 닫으면 유럽 증시가 문을 연다. 유럽 증시가 파장에 가까워지면 미국 증시가 거래를 시작한다. 강 대리가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건 미국 뉴욕 시장과 시계추를 맞추기 위해서다.

강 대리가 속해 있는 해외투자영업부는 3교대로 24시간 근무한다. 낮 근무는 다른 부서와 마찬가지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지만, 저녁 근무는 오후 2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나이트 근무’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다. 24시간 ‘온 에어(on-air)’인 셈이다.

한투증권의 주 고객인 국내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투자신탁사 등 기관 투자자들은 미리 해외상품을 ‘예약 주문’해 놓고 퇴근한다. 이 예약된 주문들을 처리하는 게 해외투자부서의 밤샘 근무자들이다. 예약 주문이 제대로 들어갔는지, 해외 시장에서 주문이 제대로 처리되는지 등을 체크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난 10일 강 대리와 함께 밤샘 근무를 한 이대룡 차장은 “‘새벽 1시부터 5시까지 시간대별로 나눠서 주문해 달라’거나 ‘1분에 한 번씩, 몇 분 동안 주문을 내달라’ 등 요구 조건이 매우 다양해 나이트 근무 때는 더욱 긴장하게 된다”며 “잠시 긴장의 끈을 놓쳐서 주문을 잘못 처리하면 큰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새벽에 전화를 걸어오는 개인 투자자도 꽤 늘었다. 미국 등 해외주식 직접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외화증권 결제금액은 572억8000만 달러로 지난해 하반기(467억9000만 달러) 대비 22.4% 늘었다. 이중 외화주식 결제금액은 179억5000만 달러로 34.0% 증가했고, 미국 주식 결제금액은 116억2000만 달러로 지난해 하반기(77억2000만 달러) 대비 50.5%나 증가했다.

강 대리는 “페이스북과 아마존 등 미국 우량주에 100억원 정도를 투자한 70대의 고객이 있다. 이 분은 고령인데도 불구하고 미국 시장 마감 전인 새벽 4시쯤 직접 전화를 걸어 주문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신이 피곤한 시간대이긴 하지만 해외 주식에 대해 비전과 열정을 가진 분들이 전화를 주시면 저희도 신이 나서 최대한 도움을 드린다”고 말했다.

물론 신나는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밤샘 업무 고유의 육체적 피로는 말할 것도 없다. 새벽 2시에 해결해야 하는 ‘점심’도 문제다. 야식 업체에 주문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족발·보쌈·햄버거 정도로 제한돼 있다. 강 대리는 “그 시간에 중국음식점에서 짜장면을 배달해 먹을 수만 있어도  매우 감사할 것 같다”며 “야식 메뉴들이 몸에 안 좋은 건 알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밤샘 근무 주가 다가오면 이틀 전부터 미리 낮에 자는 연습을 하는 등 ‘몸만들기’에 돌입한다. 체력과 정신 모두가 힘들어지는 만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정 노동’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술에 취해 전화해 “해외투자 망해서 돈 다 날려 먹었다”고 하소연하는 사람의 푸념도 들어야 하고, 있지도 않은 ‘내부 정보’를 캐내려 계속해서 통화를 이어가는 ‘진상’ 고객도 상대해야 한다.

이 차장은 “해외투자 쪽과 전혀 관계없는 질문을 하고는 ‘증권사 직원이면서 그것도 모르느냐’고 면박을 주시면 참 답답하다”며 “가능한 한 친절하게 응대해드리려고 하는데, 마음이 좋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강 대리도 “주식의 경우 오래 통화를 하면 무슨 내부 정보라도 나올까 싶어 전화를 끊지 않는 고객들이 있는데 바쁜 시간대에 난감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차장과 강 대리는 해외시장으로 시야를 확장하는 투자자들의 문의가 반갑다. 강 대리는 “다양한 기업은 물론 국가별로도 자산 배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보수적인 성향의 투자자라도 좋은 선택지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투자자도 미리 ‘예약 주문’을 해 놓을 수 있는 만큼, 일반인들도 해외 직접투자를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강 대리는 “온라인이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해외주식 거래 시스템에 접속하면 예약주문이 가능하다”며 “원화를 입금하면 달러로 쉽게 환전할 수 있게 돼 있는데, 환전해 놓고 원하는 가격에 예약 주문을 걸어 놓으면 아침에 일어나 체결된 주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미국 우량 개별주식은 물론이고 상장지수펀드(ETF)나 중·소형주도 인기를 끌고 있다. 강 대리는 “보수적 투자자에게는 ETF를 추천하고, 좀 더 공격적인 투자를 원하는 분에게는 개별 우량주 직접투자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이 차장은 “최근에는 지수 등락을 2배 이상으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에 관심을 보이는 분들도 있는데 해외 파생상품은 시장이 조금만 들썩거려도 변동성이 커져 원금까지 날릴 수 있는 상품”이라며 “그래도 해외파생상품에 관심이 간다면 위험 분산 차원에서 소액만 투자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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