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s] 나홀로 출판 꿈꾸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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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사진=김성룡 기자]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지난해 9월까지 새로 생긴 출판사 2091개 중 열에 아홉은 사장 혼자뿐인 1인 출판사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 소장은 "초기 자본이 적게 들고 아이템만 좋으면 망할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출판 창업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설명했다. 인터넷 서점 고객이 늘어나면서 판로 개척이 쉽다는 점도 나 홀로 출판사가 뜨는 이유다. 인터넷 서점은 현금으로 대금을 주기 때문에 소규모 출판사로선 오프라인 서점과 거래하는 것보다 자금 운영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책만 좋으면 출판사 규모와 관계없이 초기 화면에 소개되기 때문에 영업력이 부족한 신생 군소 출판사도 비교적 공평하게 선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나 홀로 출판사를 차리려면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한다. 어떤 책을 펴낼 것인지에 대한 구상부터 기획.판권 계약.편집.제작을 혼자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나 조판 등 전문 분야는 프리랜서에게 외주를 주는 게 보통이다. 새로 나온 책의 언론 홍보를 담당해 주거나 입소문 마케팅을 대신해 주는 출판 홍보 전문 대행사도 생겨났다. 나 홀로 출판사는 출판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직원이 없으니 사무실도 필요 없다. 최근 제작 과정이 디지털화하면서 제작 비용도 종전 생산 방식의 3분의 1 수준이다. 나 홀로 출판사 '사이'를 연 권선희 대표는 "내 인건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책 한 권 내는 비용이 1000만원대 초반이면 된다"며 "2000~3000부 정도 찍어내는 초판만 다 팔려도 이익이 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용이 적게 든다고 운영이 호락호락한 건 아니다. 2004년 말 기준으로 등록된 출판사는 2만2000여 곳. 그중 그해 한 권이라도 책을 낸 출판사는 7.6%에 불과하다.

소규모 출판사의 가장 큰 어려움은 자금 문제다. 업계 관행상 현금 결제가 적기 때문이다. 대형 서점은 대부분 어음으로 결제하기 때문에 자금 운영이 어렵기 마련이다. 그래서 적은 자본금으로 시작한 출판사는 문을 닫기 십상이다. '출판 창업'이라는 책을 엮어낸 한미화씨는 "출판은 전문직이라 지식과 경험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책이 좋아서'라는 이유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업계 네트워크가 필요하고 출판업의 속내도 알아야 하는 만큼 짧게라도 출판사에 취직해 경험을 쌓은 뒤 창업하는 게 낫다"고 권했다. 한기호 소장도 "하루에 나오는 책이 200권 정도 여서 웬만한 책은 서점 매대에서 사흘을 버티기가 힘들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창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1인 출판사 창업 3년
한 달 매출 5000만원

박설림씨의 성공 비결

2003년 나 홀로 출판사로 문을 연 재인출판사는 3년 만에 매달 5000만원 정도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방송국 프로듀서 출신인 박설림 대표로부터 그동안 출판사를 운영하며 쌓은 노하우를 들어봤다.

1. 자본금 1억은 필요하다

2000년 방송국을 그만 둔 뒤 3년 동안 서울 압구정동에서 팬시점을 운영하며 모은 2억원을 밑천으로 출판사를 차렸다. 나 홀로 출판사는 사무실도, 직원도 필요 없기 때문에 맨손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만든 책이 안 팔릴 수도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1억원 정도의 자본금을 갖고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

2. 시장 조사 철저히 하라

3년의 준비기간에 틈나는 대로 대형 서점에 갔다. 베스트셀러를 두루 섭렵하면서 편집을 눈에 익히고 디자인 감각을 쌓았다. 손님들이 어떤 책을 사는지 알아보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사람만 쳐다보기도 했다. 이런 사전 조사를 통해 어떤 종류의 책이 잘 팔리는지, 감각 있는 디자이너는 누구인지 등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다.

3. 책 서너 권 미리 기획하라

출판사를 내기 전에 이미 서너 권의 책을 기획하거나 계약해야 한다. 계속 책을 펴내지 않으면 자금이 돌지 않고 슬럼프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2003년 7월 출판사를 등록할 당시 이미 국내 저자 한 명과 원고 계약을 마쳤고, 두 권의 번역서 판권을 따냈다.

4. 외국 인터넷 서점 체크하라

첫 책은 일본의 베스트셀러 '바보의 벽'(요로다케시 지음)이었다. 일본에서 수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였지만 한국에선 아무도 판권 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직접 외국의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니며 각국의 베스트셀러를 체크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10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으로 판권을 사들였지만 이 책은 지금까지 1만 부 넘게 팔린 효자 도서가 됐다.

5. 비용 최대한 줄여라

출판사가 안정되면서 영업 직원 한 명을 고용했지만 직원을 더 뽑을 생각은 없다. 사업 초기 6개월은 사무실 없이 집에서 일했다. 매출이 조금 늘면 비서 등 불필요한 인력을 고용하는 출판사가 많은데 나 홀로 출판의 강점을 살리려면 비용 지출을 최소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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