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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페이, ‘결제 혁명’ 될까? ‘제2의 직불카드’에 그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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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 수수료 0원. 정부와 서울시 등이 연내 시범 도입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QR코드 간편결제 플랫폼 ‘제로페이’의 목표다. 정부와 서울시 등은 제로페이를 확산해 소상공인들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을 낮춰주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정작 이를 사용해야 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요인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업계 일각에서는 제로페이가 성장 정체 상태인 직불카드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로페이는 QR코드를 활용한 계좌이체 방식으로 구동된다. 소비자가 휴대폰으로 가맹점의 QR코드를 찍거나 가맹점이 포스(POS)단말기로 소비자 휴대폰 속 QR코드를 찍으면 은행망을 통해 소비자 계좌에서 가맹점주 계좌로 돈이 이체되는 방식이다.

7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 제로 결제서비스'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 세번째),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네번째)등의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7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 제로 결제서비스' 도입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 세번째), 박원순 서울시장(왼쪽 네번째)등의 참석자들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서울시, 5개 간편결제 플랫폼 사업자, 11개 은행 등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들은 결제 수수료를 0원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QR코드 공동 규격을 마련하고 가맹점을 관리하면 간편결제 플랫폼 사업자는 자체 플랫폼 안에서 제로페이에 대한 결제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은행들 역시 계좌이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수료를 면제해주기로 했다.

덕분에 소상공인 가맹점주들은 신용카드 대신 제로페이를 활용하면 결제 수수료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현재 신용카드 수수료는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가맹점이 0.8%, 연매출 3억원 초과 5억원 이하 중소가맹점이 1.3%, 연매출 5억원 이상 일반가맹점이 2.3%다.

가맹점주들은 부가가치세 공제 혜택도 누릴 수 있다. 정부는 부가가치세법 46조에 따라 연매출 10억원 이하 개인사업자에게 카드나 현금영수증 매출의 2.6%(음식ㆍ숙박업), 1.3%(나머지 업종)를 환급해주는 이 혜택을 제로페이 매출에도 적용해주기로 했다. 소상공인 가맹점주들은 제로페이를 통한 결제금액을 늘릴수록 수수료 비용을 아끼는 한편 세액 공제를 더 많이 받게 된다.

 정부ㆍ서울시ㆍ5개 간편결제 플랫폼 사업자ㆍ11개 은행 등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들은 결제 수수료를 0원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정부ㆍ서울시ㆍ5개 간편결제 플랫폼 사업자ㆍ11개 은행 등 제로페이 사업에 참여하는 기관들은 결제 수수료를 0원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도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다. 현재 신용카드에는 15%, 체크카드에는 30% 수준의 소득공제율이 적용된다. 제로페이에 적용되는 소득공제율은 이보다 높은 40%다. 연봉이 5000만원이고 2500만원을 소비하는 직장인의 경우 신용카드 사용 시 연말정산에서 31만원을 환급받지만 제로페이 사용 시 79만원을 환급받는다.

문제는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가맹점주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에 비해 너무 적다는 점이다. 제로페이가 확산하려면 소비자들이 지갑에서 카드 대신 제로페이를 꺼내 써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럴 만한 유인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신용카드는 고객들에게 포인트ㆍ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계좌에 잔액이 없더라도 한도 내에서 신용공여가 제공된다는 점 또한 제로페이가 따라갈 수 없는 신용카드만의 혜택이다. 전국에 약 257만개나 되는 가맹점 수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2017년 말 기준 전체 민간소비지출에서 신용카드 이용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78.87%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제로페이가 성공하려면 소비자들에게 더 큰 실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이 얼마나 큰 실익을 얻을 수 있느냐에 따라 제로페이 성공 여부가 갈릴 것”이라며 “현행대로라면 소비자들이 소득공제 범위 내에서만 제로페이를 쓰고 그 이후로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등의 과거 직불카드 사용 양상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1996년 2월 처음 등장한 직불카드는 현재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은행공동망을 사용해 0.3~1%대의 낮은 수수료를 책정하고 있지만 정작 소비자들에게 신용카드만한 혜택을 제공하지 못하면서다. 2005년 1740억원 수준이던 직불카드 결제액은 점차 줄어들어 2017년 37억원을 기록했다. 소비자가 찾지 않으면서 가맹점 수도 12만3000개로 신용카드 가맹점의 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직불카드 결제금액은 점차 줄어 지난해 37억원을 기록했다. [자료 한국은행]

직불카드 결제금액은 점차 줄어 지난해 37억원을 기록했다. [자료 한국은행]

제로페이라고 해서 직불카드와 달리 소비자들에게 뚜렷한 유인책을 제공할 수 있는 상황인 것도 아니다. 사업에 참여하는 간편결제 플랫폼 사업자들과 은행들은 이미 가맹점주들에게 수수료 면제 혜택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많은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 정부 역시 부가가치세 환급, 소득공제 등의 부담을 지는데다 향후 가맹점 관리 과정에서도 적잖은 지출을 희생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로페이를 경쟁자로 마주하게 된 신용카드사들은 여유있는 마음으로 상황을 관망하고 있다. 한 신용카드사 관계자는 ”신용카드 결제 체계는 다른 나라에서 보고 배워갈 정도로 잘 돼있다“며 ”제로페이가 아무리 수수료 0%를 내세워 나온다고 해도 소비자들로 하여금 신용카드의 편리성, 혜택 등을 뒤로 하고 제로페이를 쓰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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