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극 두 개를 심장 양쪽에 삽입해 자극하면 심장의 펌핑 기능이 10% 정도 올라간다. 상용화된 미국 제품의 경우다. 그러나 그물형으로 만든 '전도성 고무'로 심장 전체에 자극을 주면 기능이 50% 올라간다. 심장질환 치료에 있어 획기적인 진보가 될 수 있다”
국내 연구진이 높은 신축성과 전도성을 띠면서도, 인체에 독성이 없는 '전도성 고무'를 개발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나노입자연구단 김대형 부연구단장과 현택환 단장 공동 연구진의 성과다.
전기가 흐르는 고무, 즉 '고무 전선'은 자기 몸집보다 최대 840%까지 늘어나 신축성이 높으면서도, 안정적으로 전기신호를 전달할 수 있어 특히 '삽입형 의료기기' 개발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금으로 은의 독성 잡고, 고무로 신축성 확보...개성 살린 팀플레이
연구진이 이번 개발한 전도성 고무는 ‘금-은 나노복합체’로도 불린다. 금ㆍ은 그리고 고무 성분인 ‘SBS 엘라스토머’ 세 가지 소재의 장점만을 살려 만들어졌고 각각이 제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가장 중요한 기능인 전기 전달은 ‘은 나노 와이어’가 담당한다. 은 나노와이어는 높은 전도성과 안정적인 전기특성으로 기존에도 전도성 소재로 각광을 받아왔다. 실험과정에서 고무 전선을 늘리거나 그물형태로 제작하는 등 기계적 변화를 가했음에도 전도성은 기존의 소재에 비해 7000배 이상 높았다.
금은 은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사용됐다. 은 이온은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를 죽이고 독성을 유발하는 등 유해한 특성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서 쉽게 산화돼 내구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은 나노와이어 표면에 금을 균일하게 입히고 둘 사이에 화학반응을 억제해 내구성을 높였다. 은 이온도 새어나오지 않게 막았다.
신축성은 고무 성분인 SBS 엘라스토머의 몫이다. 고무는 '금-은 나노와이어'와 섞이지 않으면서도 공존할 수 있어 전선에 힘이 가해질 경우 고무 부분으로 힘이 효율적으로 분산된다.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형태 변화가 자유롭다. 금ㆍ은ㆍ고무의 개성을 살린 팀 플레이다.
심장에서 인체 전기신호 읽게 돼...맞춤형 의료기기 생산 가능
독성 문제를 해결한 전도성 고무는 신체에 삽입될 수 있다. 신체 삽입형 의료 디바이스 응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연구진은 이를 이용해 실험을 수행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돼지의 심장에 그물 형태의 전선을 고무 전선을 감아 전기 신호를 읽어 낸 것이다.
현 연구단장은 “일반적으로 상용화된 심장 자극기는 전극이 두 군데만 연결 돼 있다”며 “그러나 그물형태의 심장 자극기는 심장 전체를 감싸고 전기 자극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제품과 비교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김 부연구단장은 “이번 실험에는 42개 채널을 통해 심장 전기신호를 읽어낼 수 있었다”며 “이 경우 환자 개개인의 심박 페이스에 맞춰 최적화된 전기 자극을 줄 수 있어 치료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번 연구 성과는 14일 자정, 국제 과학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이번 개발한 복합 소재가 고전도성ㆍ고신축성ㆍ생체친화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만큼 향후 바이오메디컬 디바이스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