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미자, 계약서 작성 거부"···내막 드러난 연예인 탈세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수 이미자 공연 모습. 왼쪽은 이미자씨와 소송을 벌인 서울 반포세무서 전경. [중앙포토, 다음로드뷰]

가수 이미자 공연 모습. 왼쪽은 이미자씨와 소송을 벌인 서울 반포세무서 전경. [중앙포토, 다음로드뷰]

가수 이미자(77)씨가 10년간 44억원이 넘는 소득 신고를 누락해 온 정황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2017년 가수 인순이와 2011년 개그맨 강호동 등 유명 연예인들이 그동안 탈세 의혹을 받아왔지만 국세청에 추징 금액을 납부하거나 검찰 수사 단계에서 무혐의로 처분을 받으면서 내막이 드러나지는 않았다. 이씨의 경우 국세청과 소송을 벌이면서 재판을 통해 이런 과정이 외부로 공개됐다.

 이씨는 지난 4월 반포세무서로부터 19억9000여만원 종합소득세를 내라고 고지받았다. 반포세무서는 이씨가 2006~2015년 콘서트를 하면서 얻은 수익 중 상당 부분을 매니저 권모씨에게 현금으로 받은 뒤 신고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매니저로부터 받은 돈을 자신의 계좌가 아닌 남편 계좌에 입금하거나, 아들에게 약 20억원을 현금 증여하는 식이었다. 세무조사 결과 이씨가 10년간 이런 방법으로 탈루한 수입금액은 44억5000여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이씨는 국세청이 부정한 방법으로 과세를 피해 왔다는 이유로 높은 가산세를 적용했다며 국세청장에 심사청구를 했고, 기각되자 소송을 제기했다. 이씨 측은 “매니저 권모씨를 절대적으로 신뢰해 시키는 대로 했을 뿐, 탈법이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 이성용)는 지난 3일 이씨가 반포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종합소득세 등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씨는 적극적인 은닉 행위를 통해 반포세무서의 조세 부과와 징수를 현저하게 곤란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또 “이씨가 공연료 수입액을 몰랐을 리 없는데도 그에 현저히 미달하는 금액만 신고하면서 매니저 말만 믿고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공연기획사들도 이씨 요구에 따라 출연료를 나눠 지급했는데, 이는 거래처에 허위 증빙을 하도록 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1년 9월 탈세혐의을 받았던 개그맨 강호동이 서울가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예계에서 잠정은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머리를 숙여 사죄의 뜻을 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1년 9월 탈세혐의을 받았던 개그맨 강호동이 서울가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예계에서 잠정은퇴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뒤 머리를 숙여 사죄의 뜻을 표하고 있다. [중앙포토]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연예계 탈세 혐의가 드러나는 수사로도 확대될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이번 판결로 공연기획사인 한 업체가 “매니저 권씨에게 계약서 작성을 제안했지만 권씨가 ‘이씨 공연에서 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없다. 이씨도 계약서 작성을 거부한다. 이씨가 여태껏 해온 것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할 것인데 어떻게 써주겠냐’”고 진술한 부분이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고의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조세포탈 혐의로 검찰 수사도 가능하다”며 “공연 기획사가 다른 가수에게도 계약서를 썼는지 밝히면 연예계 전반으로도 파장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판결로 드러난 종합소득세로 이씨의 소득 규모도 추정됐다. 2006~2015년 이씨의 종합소득세는 19억9077만원으로 나타났다. 2012년과 2013년에 각각 3억4464만원과 3억3768만원이었다가 2014~2015년 감소 추세를 보였다. 한 세무 전문가는 “최고 세율 42%를 감안하면 이씨 종합소득세가 정점을 찍었던 2012~2013년 연간 소득은 8억원으로 추정된다”며 “연예인들은 매니저나 백댄서 식사 비용과 의류 구입비를 경비로 인정받기 때문에 실제로 버는 돈은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창남 강남대 경제세무학과 교수는 “카바레나 나이트 같은 밤무대 업소는 검은돈이 모여 현금으로 주로 거래하는 데다 매니저 차명 계좌로 소득을 속이는 연예인이 많았다”며 “최근엔 대형 기획사가 소득을 관리하기 때문에 이런 관행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라고 전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