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국토 대부분이 바다와 맞닿아 있고 메콩강이 캄보디아부터 흘러내려와 남중국해로 향한다. 수자원이 풍부할 것 같지만 정작 베트남은 '물부족 국가'다. 지하수엔 비소 등 중금속이 다량으로 포함됐으며, 하수처리시설이 부족해 오염 하수가 그대로 강으로 흘러가 식수로 쓰기 어렵다.
베트남의 물부족을 한국의 '빗물 정화 기술'이 해결할 수 있을까.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런 실험에 나선다. 8일 한 교수팀에 따르면 8일 베트남 호치민시의 통덕탕 대학에 12t 규모의 빗물식수화시설을 이날부터 본격 가동한다. 한 교수는 “지난달 현지를 찾아 베트남 인력과 함께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자재로 공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탱크 4대로 4중 정화 후 식수 사용
이 시설은 대학교 체육관에 설치됐다. 체육관 지붕 일부(200㎡)에 떨어지는 빗물이 1.5t짜리 물탱크 4대를 지나, 마지막으로 2단계의 필터까지 거치면 사람이 마실 수 있는 물이 된다.
한 교수팀은 빗물 속 오염물질들이 가라앉는다는 점을 주목했다. 탱크 아래로 오염물질이 자연스레 가라앉으면 좀 더 맑아진 물만 옆 탱크로 이동한다. 탱크 4대를 연결했기 때문에 이런 정화 방식을 4차례 거치게 되는 셈이다. 한 교수는 이런 시설을 체육관 내에 두 군데로 나눠 만들어 총 12t 규모의 식수를 얻을 수 있는 시설을 만들었다. 음용기는 체육관 1층 로비에 마련했다.
실시간 수질 모니터링 최신 기술 적용
특히 한 교수팀은 실시간으로 수질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술을 최초로 도입했다. 각 탱크 등에 산성도·전기전도도·온도를 확인하는 센서를 달았다. 수질 이상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고, 연구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를 확인하는 업무는 통덕탕 대학생들이 맡는다. 한 교수팀은 2007년부터 아프리카·필리핀·솔로몬군도 등에 빗물식수화시설 20여개을 만들었지만 이번처럼 실시간 확인 기술이 접목된 적은 없었다.
"빗물식수화 기술은 '콜럼버스 달걀'"
베트남은 빗물 이용에도 유리한 조건이다. 호치민의 연 평균 강우량은 1868㎜, 하노이는 1684㎜다. 반면 서울의 강수량(눈·우박 등 포함)은 1373㎜다. 지난달 베트남은 태풍 ‘손띤’의 영향으로 인명 피해를 포함한 심각한 물난리를 겪었다. 3일간 464㎜가 내릴 정도다. 한 교수는 "현재는 이렇게 버려지고 피해까지 입히는 빗물이 앞으로는 베트남의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빗물 식수화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2012년 한 교수팀은 전남 신안군 기도에 빗물이용시설을 만들었다. 주민들이 평소에 사용할 생활용수뿐 아니라 마실 물이 마련됐다. 그전까지 기도 주민들은 육지에서 생수를 사와야 했다.
앞서 2006년에는 서울 광진구의 한 주상복합건물에 빗물저장시설을 만들었다. 이곳에 모인 빗물은 건물 주변 분수·스프링클러·공용화장실 등에 쓰인다. 호주 같은 선진국에서도 빗물이용시설을 만드는 건물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기도 하다.
한 교수는 “빗물식수화기술은 ‘콜럼버스의 달걀’과 같다”며 “사람들은 빗물을 식수로 쓴다는 데 거부감이 있지만, 큰 비용·기술이 들지 않으면서도 식수난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