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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의혹 석탄 하역한 진룽호, 정부 “혐의 없다” 출항 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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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7일 오후 경북 포항시 남구 송정동 포항신항 제7부두. 1만여㎡ 너비의 부두 하역장에 시커먼 5000t 규모의 석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뿌연 석탄 먼지 뒤로 거대한 선박 하나가 눈에 띄었다. 뱃머리엔 페인트칠이 일부 벗겨진 ‘JIN LONG’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화물선 진룽호였다. 진룽호는 최근 북한의 석탄을 국내로 반입했다고 의심받는 벨리즈 국적의 선박이다. 진룽호 옆엔 대형 크레인 한 대가 석탄을 퍼담는 집게를 이용해 선박에 실린 석탄을 퍼서 하역장에 부리는 작업을 했다.

포항에 5100t 내린 뒤 곧바로 떠나 #배 이름 2회 변경 중국회사 실소유 #21차례 국내 입항, 조사 대상 올라 #외교부 “이번엔 러시아산 싣고 와”

진룽호는 포항신항에 석탄 5000여t을 내린 후 나머지 100여t도 하역했다. 하역작업을 하던 인부들에게 “북한산 석탄 아니냐”고 묻자 “석탄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그냥 시키는 일만 한다”고 말했다. 인부들에 따르면 이 석탄은 경북의 한 석탄가공공장으로 옮겨진다. 석탄의 화주인 포항시의 고체연료 도매업체 D사 관계자는 “석탄은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북한산은 아닌 것으로 안다”며 “포항 지역 제철·제강업체에 공급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산 석탄을 반입한 의혹을 받는 진룽호가 정박 중인 경북 포항신항에서 7일 석탄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외교부는 ’진룽호는 러시아산 석탄을 적재 하고 들어왔으며 관계기관의 선박 검색 결과 안보리 결의 위반 혐의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작업을 마친 진룽호는 이날 오후 4시50분쯤 출항했다. [뉴스1]

북한산 석탄을 반입한 의혹을 받는 진룽호가 정박 중인 경북 포항신항에서 7일 석탄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외교부는 ’진룽호는 러시아산 석탄을 적재 하고 들어왔으며 관계기관의 선박 검색 결과 안보리 결의 위반 혐의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작업을 마친 진룽호는 이날 오후 4시50분쯤 출항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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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이날 오후 진룽호를 억류하지 않고 출항을 허가할 방침임을 알렸다. 정부의 입출항 기록에 따르면 이 선박은 지난 4일 오전 7시30분 포항신항에 들어와 8일 오후 11시 출항 예정이었다. 그런데 이 배는 정부의 ‘출항 허가’ 방침이 알려진 후인 7일 오후 4시50분쯤 하역작업을 끝낸 뒤 출항했다. 정부 기록보다 하루 앞서 출항했다. 이 배는 당초 러시아 나홋카항에서 곧바로 포항신항으로 왔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7일 위성사진을 제공하는 ‘플래닛 랩스’의 자료를 근거로 “진룽호가 나홋카항의 석탄을 취급하는 부두에서 출발했다”며 “나홋카항에 머무른 시점인 1일 오전 11시14분에 찍힌 위성사진을 보면 이 선박의 바로 옆에는 석탄으로 보이는 검은색 물질이 있었다”고 전했다.

진룽호는 지난해 10월 러시아산으로 둔갑시킨 북한산 석탄 4584t을 동해항에 하역했다는 의혹으로 이미 관세청 등의 조사 대상에 오른 배다. 당시에도 나홋카항에서 한국으로 직항했다. 이후 진룽호는 이번까지 21차례에 걸쳐 한국에 입항했다.

하지만 정부는 진룽호를 검색했지만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진룽호는 이번에 러시아산 석탄을 싣고 들어왔으며, 관계기관의 조사 결과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97호는 현재뿐 아니라 과거 북한산 석탄 수입에 연루된 선박도 억류하도록 했다. 자유한국당의 북한 석탄 대책 TF 단장을 맡은 유기준 의원은 “진룽호의 경우 이번뿐 아니라 지난해 10월 것까지 더해서 볼 때 유엔 결의안에 따른 조치(나포·검색·억류)가 지금 취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진룽호는 그간 대북제재 위반에 연루된 선박들의 특징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2008년 이후 배 이름이 두 차례 바뀌었고, 기국(flag state)도 네 차례나 달라졌다. 이 배는 벨리즈 선박으로 등록돼 있지만 실제 소유주는 ‘산둥 징하이 산업그룹’이라는 중국 회사다.

한편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 6일 평안북도 무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경제 제재가 본격화된 재작년부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속여 수출했다”고 보도했다. 또 “북한산 석탄이 나홋카항에 도착하면 러시아 회사는 석탄을 실은 선박이 도착한 시간과 머무른 시간, 하역량, 석탄 품질까지 분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류를 위조해 주기 때문에 북한산 석탄을 수출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유지혜 기자, 포항=김정석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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