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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문관이 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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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팀장

김원배 사회팀장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초기 검찰은 분명 개혁 대상이었다. 하지만 수뇌부가 교체되고 적폐청산의 최전선에 나서면서 검찰의 위상은 다시 높아졌다. 요즘은 전성시대를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젠 대법원도 검찰의 칼끝을 피해갈 수 없다. 법원행정처의 재판 거래 의혹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개혁 대상이던 검찰, 대법원·공정위까지 수사하며 위상 강화 #적폐청산 필요하지만 검찰 권력의 비대화는 항상 경계해야

검찰로썬 ‘꽃놀이패’를 쥐었다. 물론 법원은 검찰이 청구하는 압수수색영장을 쉽게 발부해주지 않는다. 법원 내부에선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법원 정보를 과도하게 확보하는 것은 장차 사법권 독립에 장애가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영장을 기각할수록 법원은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기관이 아니라 ‘제 식구 봐주는 조직’으로 전락한다. 압수영장을 받으면 법원 수사에 드라이브를 걸 수 있고, 기각돼도 부담은 법원으로 돌아가니 검찰로선 밑질 게 없다.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도 ‘진짜 검찰’에 혼이 나고 있다. 이미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과 김학현 전 부위원장이 구속됐다. 이들에겐 민간기업을 압박해 공정위 퇴직자를 취업시킨 업무방해 혐의가 적용됐다. 자녀 취업을 청탁한 김 전 부위원장에겐 뇌물수수 혐의가 추가됐다. 그뿐만 아니다. 정 전 위원장의 전임자인 노대래·김동수 전 위원장도 검찰 조사를 받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이 맞는다면 과연 공정위가 기업들에 공정거래법을 지키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다만 한편에선 “검찰이 다른 의도 때문에 공정위를 과잉 수사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의 존폐 문제로 검찰과는 불편한 관계다. 전속고발권은 주요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에 대해선 공정위가 고발해야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검찰 입장에선 수사권이 제한되는 것이라 마땅치 않다. 한 전직 공정위 간부는 “다른 정부 부처도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유사한 일이 있는데 검찰이 공정위만 문제 삼았다. 검찰이 공권력을 사유화했다”고 비판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그의 말을 듣고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취업심사 결과를 찾아봤다.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감사원이나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막 퇴직한 공직자가 민간기업 고문이나 민간협회로 취업한 경우가 있었다. 물론 취업한 것만으로 해당 부처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아가 검찰의 의도를 갖고 수사했다는 확증을 찾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여럿 있다면 왜 공정위만 문제 삼느냐는 식의 불만은 나올 수밖에 없다. 더욱이 김상조 현 공정위원장의 취임 이후인 올해 5월과 8월에 공정위 퇴직 직원이 민간기업 고문으로 간 사례가 있었다. 이런 부분을 철저히 규명하지 않으면 검찰은 과거 정권의 공정위만 손 본 것이 된다.

적폐청산은 거역할 수 없는 명분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가도 중요하다. 적폐청산을 실제 집행하는 기관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조직 논리에 따라 수사를 끌고 갈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서울중앙지검은 4차장 직위를 신설하고 범죄수익환수부를 새로 설치하면서 조직을 확대했다. 적폐청산 수사를 주도하는 서울중앙지검의 경우 특수수사 기능이 비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적폐청산과 검찰 개혁은 청와대가 천명한 목표다. 하지만 현실에서 적폐청산은 검찰 권력의 강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문재인 정부도 검찰의 권한이 강하다는 인식하에 경찰에 1차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주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했다. 그래도 검찰은 여전히 막강한 특수수사 기능을 갖는다. 공직자 수사를 전담한다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설치된다지만 검찰과 어떻게 선을 그을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해선 국회가 입법을 해야 하는 데 2년 뒤 총선을 치르는 집권 여당과 야권의 셈법도 다를 것이다.

경찰을 불신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로 경찰은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에서 보듯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선 소극적으로 대처했다. 허익범 특검팀이 6일 소환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공모 혐의를 입증한다면 경찰은 부실 수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 수사의 주임검사로 취재진의 무혐의를 주장하다 옷을 벗은 임수빈 변호사는 지난해 5월 검찰 개혁 방안을 담은 『검사는 문관이다』라는 책을 냈다. 임 변호사는 이 책에서 “검사는 무관이 아니라 문관이어야 한다. 검사의 기본 업무는 칼잡이가 아니다. 공익의 대표자로서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적법 절차를 준수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라고 밝혔다. 그는 검찰의 특수수사 조직과 인원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지금 칼을 한창 휘두르는 검찰이 적폐청산을 마무리한 뒤 순순히 문관이 되려 할까. 아니면 칼을 놓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적폐를 찾아낼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김원배 사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