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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대일로에 다대다로를 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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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오영환
오영환 기자 중앙일보 지역전문기자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 논설위원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 논설위원

미국의 중국 굴기(堀起) 견제가 심상치 않다. 경제·안보가 따로 없다. 미 행정부 내 역할 분담도 치밀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중 관세 폭탄의 전면에 섰다. 통상 전쟁 명분은 무역 역조와 불공정 관행이다. 지적 재산권 보호는 핵심이다. 중국의 첨단산업 비전(‘중국 제조 2025’)을 정조준했다는 평이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새로운 표준을 둘러싼 패권 싸움의 색채가 짙다. 미국은 안보의 이름으로 외자의 합병도 규제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1978년 중국의 개혁·개방 40년 만에 관세·투자 장벽을 둘러친 것은 국가 전략의 일대 전환이다. 미국의 대중 데탕트나 최혜국 대우는 중국 부상의 한 토대였다. 미국이 2차대전 이래 자국 주도 질서의 한 축인 자유무역을 내팽개치는 것은 아이러니다. 글로벌 위상 축소를 상징한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넘는 역학 관계 변화가 깔렸을지 모른다.

미 대통령·장관들 전면에 나서 중국의 ‘붉은 경제권’ 견제 #인도·태평양 ‘그레이트 게임’ 재현 … 유연한 실용주의 필요

미국의 아태 전략도 공세적이다. 중국의 유라시아 광역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서 인도·태평양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수세적 아시아 회귀·재균형과는 궤를 달리한다. 서태평양에서 인도양 서쪽 아프리카까지 자유롭고 열린 질서를 추구하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남중국해 군사 거점화, 일대일로 견제의 서진(西進) 정책이다. 5월 말 태평양사령부의 인도·태평양사령부 개편은 그 일환이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직설적이다. 이 행사에서 “인도·태평양은 다대다로(many belts, many roads)”라고 선언했다. 그 보름 뒤엔 “중국 모델은 다른 나라들에 조공국이 되기를 요구하는 명(明) 왕조 같다”고 쏘아붙였다. 중국이 다른 나라에 막대한 부채를 안기는 수탈적(predatory) 경제를 활용한다고도 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6월 말 만난 매티스에 일갈했다. “선조의 영토를 한 치도 포기할 수 없고, 남의 땅은 조금도 넘보지 않는다”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등판했다. 지난주 인도·태평양 경제 비전을 발표했다. 타깃은 역시 일대일로다. “우리는 전략적 종속(dependency)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십을 신봉한다”고 했다. 미 국무·국방장관이 현대판 제국주의, 종속이론을 제기할 정도로 세상은 변했다. 폼페이오는 1억1300만(약 1269억원) 달러의 역내 개발기금과 3억 달러의 안보협력 출연을 공약했다. 현재 미 의회에 계류 중인 해외개발 금융 관련 법안의 규모는 600억 달러다. 여기에 일본과 호주가 가세한다. 인도·태평양을 오성홍기의 붉은 경제권으로 두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19세기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영·러 간 ‘그레이트 게임’이 재현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개발 금융 규모는 중국엔 턱없다. 중국의 파키스탄 인프라 투자액만 620억 달러다. 일대일로 대상 70개여 국에 대한 중국의 10년간 투융자 규모는 1조5000억 달러를 넘을 것이란 추산이다. 일대일로의 경제 효과는 적잖다. 개도국 경기를 자극하고, 유라시아 거리를 좁혔다. 그러나 문어발식 확장의 파열음도 크다. 중국의 차관 형식 투자로 빚더미에 앉은 나라가 한둘이 아니다. 파키스탄은 구제금융 위기에 몰렸다. 미군이 주둔 중인 지부티(아프리카)는 중국에 기지를 제공했고, 스리랑카는 항구 사용권을 중국에 넘겼다. 일대일로는 또 다른 적(敵)도 만들고 있다.

미·중 세력 경쟁은 우리 외교의 시험대다. 한반도 위로 강대국 대결 구도가 작동한다. 북한은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 중국은 비핵화보다 지정학을 우선하기 십상이다. 내 편이 아쉬운 판이다.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주춤거리는 이유일지 모른다. 한국 처지는 어렵다. 미국은 동맹이고, 중국은 기회와 협력의 파트너다. 동맹에 두 발을 딛고 파트너에도 팔을 내미는 자세가 필요할 때다. 제로섬 시각에서 벗어나야 숨통이 트인다. 유연하면 부러지지 않는 법이다.

오영환 군사안보연구소 부소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