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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한민국 럭비 국가대표 김진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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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훈련이 끝난 뒤 럭비공에 입을 맞추는 김진. 럭비를 계속 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1m96㎝의 키에 탄탄한 체격이 돋보인다. [프리랜서 김성태]

훈련이 끝난 뒤 럭비공에 입을 맞추는 김진. 럭비를 계속 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1m96㎝의 키에 탄탄한 체격이 돋보인다. [프리랜서 김성태]

“어머니가 한국 모델계에 새로운 길을 열었던 것처럼 저도 한국 럭비 발전에 기여하고 싶어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D -11 #세계적 패션모델 김동수가 어머니 #196㎝·102㎏의 육중한 체구 자랑 #지난해 특별귀화 … AG 출전 자격 #“12명 엔트리 들어 진가 보여줄 것”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 남자럭비 7인제 대표팀에는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하프 코리언’ 안드레 진 코퀴야드(27)다. 한국 이름은 김진. 그의 어머니는 1980년대 세계적인 모델로 활동했던 김동수(61) 동덕여대 패션학과 교수다. 한국 1세대 패션모델로 세계 유명 패션쇼 무대에 서며 이름을 알렸다.

지난달 31일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에서 만난 김진은 유창한 우리말로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어머니는 늘 한국인 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내 미들네임에 ‘진’이 들어있는 이유”라며 “대학 때까지는 한국어를 제대로 읽고 쓰지도 못했다. 3년 동안 대표팀에서 합숙훈련을 하면서 한국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이제 진짜 한국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김진(왼쪽)과 아버지, 해외 진출 1호 모델인 어머니 김동수씨. [프리랜서 김성태]

어린 시절 김진(왼쪽)과 아버지, 해외 진출 1호 모델인 어머니 김동수씨. [프리랜서 김성태]

서울에서 태어난 뒤 7세까지 살았던 김진은 일본·미국·캐나다 등에서 생활하다 201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럭비에선 귀화 여부와 관계없이 국가대표 선수로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조부모나 부모 중 한쪽이 그 나라 출신이면 된다. 다만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에는 나설 수 없다. 4년째 럭비 국가대표로 활약 중인 그는 한국에 온 지 3년 만인 지난해 8월에야 특별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얻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고교 시절(캐나다 밴쿠버) 럭비를 처음 접한 그는 미국 럭비 명문 UC 버클리에 입학했다. 당시 미국 17세 이하 대표팀에 뽑힐 정도로 기량이 뛰어났다. 졸업 후 샌프란시스코의 세미 프로팀에서 뛰던 그는 2014년 중국 상하이에 있는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다 2015년 한국에서 재능이 뛰어난 럭비 선수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대한럭비협회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김진은 “아버지가 ‘돈은 평생 벌 기회가 있지만, 럭비는 평생 할 수 없다’고 하셨다. 내 경력을 중단해야 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럭비를 다시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국대표팀에서 나를 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구나 1년에 기껏해야 1~2주 정도 얼굴만 볼 수 있었던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셨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김진은 2015년 5월 국가대표팀에 합류해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대표팀 경기가 없을 때면 소속이 없는 게 문제였다. 다행히 국군체육부대(상무) 서천오 감독의 배려로 플레잉 코치 자격으로 상무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훈련도 했다. 김진은 “정식 군인은 아니었지만 지난해 11월에 ‘전역’했다. 올해는 미국에 프로리그(메이저리그 럭비)가 생겼는데 고교 시절 감독의 소개로 시애틀 시울브스팀에 입단했다”며 "7인제 월드컵을 유치한 미국에서도 럭비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프로 시즌이 끝난 뒤 곧바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했다.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중인 김진(왼쪽)과 럭비대표팀. [프리랜서 김성태]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중인 김진(왼쪽)과 럭비대표팀. [프리랜서 김성태]

김진은 키 1m96㎝에 몸무게 102㎏의 육중한 체구를 자랑한다. 대표팀에선 공격보다는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해 동료들에게 기회를 만들어 주는 궂은 일을 맡는다. 아시안게임 첫 경기는 대회 개막 8일 후인 26일이다. 그래서 최종 엔트리 12명도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아시안게임 개막을 앞두고 현재 전남 진도에서 15명이 훈련하고 있다. 김진은 "내 포지션에는 아시안게임에 이미 두 차례나 출전했던 선배들이 있다. 경험은 부족하지만 나에겐 젊음이 있다. 12명 안에 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진의 꿈은 크다. 그는 "한국 사람들은 축구·씨름·격투기 같은 종목을 좋아한다. 럭비에는 공을 차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싸우는 요소가 다 들어있다. 싫어할 이유가 없다. 외국에서도 빠르고 기술 좋은 한국 럭비의 잠재력을 높이 산다”며 "협회와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한국 럭비의 진가를 보여줘야 한다. 은퇴한 뒤에도 한국 럭비를 위해서 뛰고 싶다”고 강조했다.

남자 럭비는 4년 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다. 이번 대회에선 아시아 최강인 일본이 강력한 우승 후보다. 홍콩·중국 등의 실력도 만만치 않다. 최창렬 대표팀 감독은 "사흘 동안 6경기를 치르는 7인제 경기에선 체력이 가장 중요하다. 합숙 훈련 동안 9kg이나 체중이 빠진 선수가 있을 정도다. 강도 높은 체력훈련을 견뎌냈으니 이제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진천=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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