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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근무·냉방버스 등 운영하니 소방관 탈진·탈수 증상 줄었다

중앙일보

입력

경기재난안전본부, 소방관 여름철 지원대책 살펴보니

지난 5일 오전 10시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상황실. 경기도 안산시의 한 단열재 제조공장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불이 난 곳은 공장이 몰려 있는 시화공단이었다. 불길이 다른 공장으로 번질 수도 있다.
소방당국은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지역을 관할하는 안산소방서는 물론 인근의 시흥·군포·안양소방서의 펌프차 등 장비 36대와 소방대원 100여 명을 투입했다. 대응 1단계는 인접한 3∼4곳 소방서에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경보령으로, 화재 규모에 따라 대응 2·대응 3단계로 확대한다.

지난 5일 경기도 안산시 단열재 제조공장 화재 현장 모습. 이날 안산시의 최고 기온은 35도를 넘나들었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지난 5일 경기도 안산시 단열재 제조공장 화재 현장 모습. 이날 안산시의 최고 기온은 35도를 넘나들었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소방관들의 신속한 대응으로 불은 지상 3층, 지하 1층 9800㎡ 규모의 공장 1개 동을 태워 소방서 추산 8억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낸 뒤 1시간 30분 만에 꺼졌다. 휴일이라 인명피해는 없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혹서기 근무방식 개선 #폭염 속에선 방화복만 입어도 내부 온도 50도 육박 #교대 근무·얼음조끼 지급·냉방버스 등 도입하니 만족도 ↑

이날 안산시의 최고 기온은 35도. 소방대원들의 경우 산소통 등 약 20㎏에 이르는 개인보호 장비와 방화복을 입고 불을 꺼야 하는 만큼 무더위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한 소방관은 "여름철은 방화복만 입고 있어도 내부 온도가 50도에 육박한다"며 "특히 요즘 같은 찜통더위에 100도를 넘나드는 화재 현장에서 진화 작업까지 벌이면 출동 대원 대부분이 탈수·탈진 증상으로 바닥에 눕는다"고 했다.

폭염 속에 화재진압을 마친 뒤 지쳐있는 소방관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폭염 속에 화재진압을 마친 뒤 지쳐있는 소방관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하지만 이날 화재 현장에선 탈수·탈진 증상을 보이는 소방관이 한 명도 없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가 새로 도입한 여름철 근무방식 때문이다.
소방대원들은 모두 출동 전 얼음조끼를 입고 20~30분 간격으로 현장에 투입됐다.
한쪽의 그늘진 곳엔 대형 선풍기와 얼음물과 얼음 수건 등이 마련된 휴식 공간이 마련돼 막 화재 현장에서 벗어난 소방관들이 목을 축였다.
각 소방서로 돌아갈 땐 소방차가 아닌 에어컨이 빵빵하게 켜진 35인승 냉방버스를 이용했다.
안산소방서 양승우 팀장(49·소방위)는 "전에는 서 차원에서 얼음물을 챙겨주는 것 외엔 별도의 폭염 대책이 없어 직원들이 땡볕에서 누워서 쉬다가 복귀하는 일이 많았다"라며 "이번엔 교대근무로 쉴 시간을 주고 휴식 공간도 마련했더니 탈수·탈진 증상을 보이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화재 진압 후 그늘진 곳에 만들어진 휴식 공간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 고 있는 소방대원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화재 진압 후 그늘진 곳에 만들어진 휴식 공간에서 선풍기 바람을 쐬 고 있는 소방대원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경기도재난안전본부가 일선 소방관들의 건강 등을 위해 마련한 여름철 재난 현장활동 지원대책이 호응을 얻고 있다.
당초 6일부터 화성·용인·안산·남양주·파주 등 5개 소방서에서 시범운영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이날 대응 1단계 화재가 발생하면서 하루 일찍 시작했다.
안산소방서는 "공장 내부에 스티로폼 재질의 단열재가 많아 화재진압에 어려움이 있었고, 폭염 탓에 대원들의 체력 저하와 탈수 증세가 우려돼 빨리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책에서 또 눈에 띄는 점은 교대 근무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전에는 현장에 도착하는 순서대로 현장지휘관의 통제에 따라 화재현장에 투입됐다. 교대근무가 불가능해 불이 꺼질 때까지 현장을 지켜야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탈수·탈진 증상을 보이는 소방관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냉방버스에서 휴식을 취하는 소방대원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냉방버스에서 휴식을 취하는 소방대원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경기도재난안전본부는 이런 장기간 화재 진압에 대비해 현장 소방대원들을 2~3개 조로 나눠 20~30분 간격으로 투입했다.
현장에서 금방 빠져나온 소방관들은 그늘진 곳에 마련된 휴식공간(천막 또는 별도 공간)이나 냉방버스 안에서 휴식을 취했다. 탈수 증상이 있는지 등 건강 상태도 틈틈이 확인했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관계자는 "모든 직원을 한꺼번에 투입하면 화재 진압 시간이 더 단축될 수 있겠지만, 탈수·탈진은 회복 속도가 더디기 때문에 여름철엔 교대 근무로 불을 끄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화재 현장에 이 시스템이 도입되는 것은 아니다. 대응 1단계 등 화재가 크고 진압에 장시간이 걸릴 경우 현장 지휘부의 판단에 따라 도입할 수 있다.  현장 지원에 필요한 냉방버스나 천막, 아이스팩, 발전차 등은 경기도재난안전본부에 요청하면 인근 소방서에서도 지원해준다.

소방지난 5일 경기도 안산시 단열재 제조공장 화재 현장 모습. 이날 안산시의 온도는 35도를 넘나들었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소방지난 5일 경기도 안산시 단열재 제조공장 화재 현장 모습. 이날 안산시의 온도는 35도를 넘나들었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하지만 인력과 예산이 문제다. 소방청의 2017년 광역시도별 소방공무원 1인당 담당 인구' 따르면 경기도 소방관 1명이 담당하는 인구는 1548명으로 전국 평균(1091명)보다 많고 강원도(533명)에 비해선 배나 많았다. 그래서 큰불이 나면 내근직은 물론 인근 소방서의 비상근무 인력까지 동원된다.

경기도재난안전본부 관계자는 "인력이나 예산은 단시간에 확보하기 어려워 일단은 기존 인력 위주로 운영할 예정"이라며 "최대한 빨리 예산을 확보해 도내 모든 소방서로 확대 시행하겠다"고 말했다.

수원·안산=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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