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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프리카·횡집트 … 선선하던 강원도 찜통 만든 바람의 심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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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 1일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일대 온도가 40.6도를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일대 온도가 40.6도를 가리키고 있다. [연합뉴스]

한여름에도 그나마 시원한 곳, 열대야가 없는 도시. 강원도가 피서지로 각광 받는 이유는 한반도 내에서 여름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아서다. 이랬던 강원도가 지난 1일 ‘더위 신기록’을 세웠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보다도 높은 41도를 기록하며 강원도 내에선 ‘홍프리카(홍천+아프리카)’ ‘횡집트(횡성+이집트)’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평소 남서풍, 태풍 종다리탓 역주행 #태백산맥 넘은 공기 뜨겁게 가열 #산 병풍에 갇힌 홍천 지형도 한몫 #41도 폭염에 고속도로 솟아올라

상대적으로 시원하던 강원도가 올해 왜 갑자기 뜨거운 곳으로 변한 걸까. 전문가들은 ‘바람의 변덕’에서 원인을 찾는다.

올해 장마가 일찍 끝나고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하게 발달했고 상층에 티베트 고기압이 발달하면서 ‘열돔 현상’을 만들어냈다. 여기까지는 예년에도 있던 현상이다. 올해 특히 강원도가 뜨거워진 건 12호 태풍 ‘종다리’가 열대성 저기압으로 바뀌면서 일본 규슈 남측에서 서진을 한 게 결정적이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은 “여름철 북태평양 고기압에서는 남서풍이 불어야 하는데 태풍으로 인해 남동풍이 불기 시작했다”며 “역주행한 바람이 태백산맥을 넘으며 뜨거운 열기를 품었고 가장 먼저 만나는 홍천과 횡성 등에 이 공기를 불어 넣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역주행한 바람이 강원도 열기를 높였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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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에 있던 습윤한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하강하면서 고온 건조한 바람으로 바뀌는 것을 푄 현상이라고 하는데, 이번 고온 현상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푄 현상이다.

같은 날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한 시장의 모습. [박진호 기자]

같은 날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손님들의 발길이 끊긴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한 시장의 모습. [박진호 기자]

동해안에 있던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기 위해 상승할 때 기온이 100m당 0.5도씩 떨어진다. 반면 태백산맥 정상에 올라간 공기가 영서 쪽으로 하강할 때는 100m당 1도씩 상승한다. 예컨대 동해안에서 35도였던 공기가 해발 1000m 지점까지 상승하면 30도까지 떨어지고, 이후 산맥을 따라 1000m 아래 서쪽으로 하강하면서 10도가 상승해 기온이 40도까지 오르는 것이다.

이 같은 기류 탓에 홍천군은 올해 더위 신기록을 모두 갈아 치웠다. 1971년 관측이 시작된 이후 최고기온 1~5위 모두가 올해 7월 22일 이후 기록했다. 홍천의 지형적 특성도 고온 현상에 영향을 미쳤다. 홍천은 봉화산과 오성산·오용산·남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해 있다. 동해안에서 불어온 동풍이 태백산맥을 넘어 내륙으로 하강한 뒤 병풍 같은 산에 둘러싸여 홍천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김대열 강원지방기상청 관측과 주무관은 “뜨거운 공기가 갇혀 있는 데다 맑은 날이 이어지면서 강한 햇빛이 내리 쬐고 아스팔트는 복사열을 내뿜으면서 최고기온이 41도까지 오른 것”이라고 말했다.

뜨거운 공기가 홍천 내에 머물면서 이 지역을 지나는 고속도로에서는 콘크리트 포장이 팽창해 도로가 솟아오르는 일까지 발생했다. 지난 1일 오후 5시쯤 홍천군 북방면 중앙고속도로 춘천방면 368㎞ 지점 굴지터널 앞에서 도로가 균열과 함께 20~30㎝가량 솟아올랐다.

자치단체에서 열을 식히기 위해 살수차를 동원해 물을 뿌리지만 도로를 흥건히 적실 만큼 물을 쏟아 놓아도 10분 정도 지나면 흔적도 없이 증발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주민 이모(36)씨는 “아무리 물을 뿌려도 소용없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더운 날이 이어진 게 벌써 열흘이 넘었다. 언제까지 버티면 좀 나아질 수 있느냐”고 하소연했다.

강원도의 무더위는 오래 지속하지 않을 전망이다. 반 센터장은 “앞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강원도가 대구처럼 더워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보면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계속 올라가 40도를 기록할 수는 있겠지만 이번 강원도 무더위는 이례적인 현상이므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홍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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