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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시각의 반미 색채 담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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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프랑스와 독일이 함께 쓴 고교 역사 교과서가 4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교과서는 유럽연합(EU)을 놀라운 성공 스토리로 묘사했다. 반면 미국의 일방주의가 전 세계에서 광범위하게 비판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국의 공동 역사 교과서 발간 행사는 제1차 세계대전 격전지인 프랑스 북부 페론의 전쟁기념관에서 4일 열렸다.

영국의 BBC방송은 "역사는 나라에 따라 관점이 다른, 매우 민감한 주제"라고 전제한 뒤 "이 역사 교과서는 사상 최초의 2개국 공동 편찬"이라고 전했다.

BBC는 또 "집필 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필자들의 논쟁이 예상됐다"며 "그러나 정작 2차 대전 후 미국의 역할에 대한 견해 차가 가장 컸다"고 소개했다. 한편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이 교과서가 유럽 관점의 반미(反美) 색채를 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교과서 편찬은 2003년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당시 독일 총리가 함께 계획했다. 당시 양국의 고등학생들을 만난 두 정상은 교과서를 같이 만들어 역사 인식에 대한 차이점을 좁히고 유대를 강화키로 뜻을 모았다. 이번에 발간되는 새 교과서는 1945년 이후의 역사를 담고 있으며, 내년부터 고등학교 교재로 사용될 예정이다.

공동 교과서는 2차 세계대전의 원인보다는 전반적인 희생에 초점을 맞추며 양측 간 견해 충돌을 피했다. 반면 냉전과 관련해서는 미국과 소련을 비슷한 수준으로 비판했다. 미.소가 벌인 군비 경쟁을 '공포의 균형'으로 표현했으며, 이 과정에서 양측이 과장된 선전 활동을 펼쳤다고 언급했다.

공동 교과서는 이어 EU가 다극주의 등을 통해 국제무대의 모델로 부상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미국의 일방주의에 따라 음악.영화 등 문화 분야가 미국의 거대 기업에 의해 지배받고 있으며, 이들 업체가 자유무역의 주된 수혜자들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교과서 집필에는 모두 10명의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다. 양국 필진은 토론을 거듭하며 견해 차를 조율해야 했다. 독일 필자들이 프랑스 필진을 '반미적'이라고 여긴 반면 프랑스인들은 독일인들이 '친미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일 역사학자들은 반미 내용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에 대체로 반대했다고 한다. 한 독일 학자는 "미국이 세계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강국이라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집필위원회의 부위원장인 기욤 르 캥트렉(프랑스)은 "단어 하나에도 신중을 기해 양측이 동의한 '균형된 시각'을 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교과서가 친유럽적 이데올로기를 담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긍했다.

양국은 현재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역사 교과서 두 권도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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