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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 음악가 김순남의 딸 세원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가슴에 꽉 박혀 있던 큰못이 쑥 뽑혀나간 느낌입니다. 이제부터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가 나와도 당황하며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겠지요.』
아버지 김순남씨의 일부 작품들이 해금됐다는 소식에 방송인 김세원씨(43)는 기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6일 음악학연구회주최로 예음홀에서 열린 「김순남·이건우 가곡연구발표회」에서 행여 자신이 월북음악가의 딸이라는 사실을 남들이 눈치챌세라 「시치미 딱 떼고」객석에 앉아있던 김씨는 이제껏 단 한번도 입밖에 내보지 못한 아버지의 이름이 수없이 불려지는걸 들으면서 『이게 정말일까』싶더라고 했다.
어린 김씨가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 할 때마다 무남독녀인 딸에게 행여 좋지 않은 영향이라도 끼칠까봐 그의 어머니 문세낭씨(67)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셨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곤 했다고.
그러나 점점 자라면서 아버지가 미군정시절 음악고문인 「헤이모위츠」로부터 『조선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인』이라고 불릴 만큼 높이 평가되는 음악가라는 사실을 알게됐지만 말로만 듣던 『산유화』 『초혼』 등의 가곡이 연주되는 것을 지난 6일에야 직접 듣게된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48년 당국의 체포령이 내러 월북하게된 아버님을 통일되면 꼭 얼굴을 뵙고 싶었는데 재작년에 작고하셨다는 소식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세 살 때 헤어져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그 이름을 입에 담을 수 조차 없는 아픈 상처를 용케도 이겨내며 꿋꿋이 자라 외대 불어과를 졸업한 김씨는 동양방송 제1기생으로 방송계에 들어선 중견방송인. 부군 강현두 교수(서울대)와의 사이에 대학생이 된 1남1녀의 어머니가 된 이제야 『진짜 홀가분하고 편안한 기분이 뭔지를 알겠어요.』라며 활 짝 웃었다. <김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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