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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은 처벌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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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사회팀 차장

문병주 사회팀 차장

또 기각이다. 지난 24일 6억원대 밀수 혐의를 받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관세청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반려했다. 아버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포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제외한 가족 모두가 구속영장의 대상이 됐지만 다섯 번 모두 검찰이나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적용된 혐의는 다양하다. 폭행·폭언과 같은 직원들에 대한 ‘갑질’성 죄에 탈세·횡령·배임 등이 추가되면서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할 듯한 ‘범죄가족’화됐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증언을 듣고, 공개된 영상과 사례들을 접한 일반 사람들이라면 ‘구속돼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한데 다섯 번이나 검찰 혹은 법원에서 다른 판단이 나왔다. 이쯤 되니 관세청과 법무부 산하 서울출입국외국인청 이민특수조사대까지 나선 수사 과정이나 이들 기관의 판단이 적절했는지 궁금해진다.

한진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유로는 ‘범죄 사실에 대한 소명 부족’이 가장 많았다.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거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사유도 있었다. 영장이 하나하나 되돌려질 때마다 “재벌 봐주기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거액을 들여 거물급 변호인들을 많이 선임했을 것이라는 말도 들렸다. “여론 재판을 받고 있다”는 의견은 적폐적 발언으로 치부됐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198조 1항에는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적시돼 있다. 법 제70조에는 구속 사유로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 인멸 염려가 있을 때, 혹은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를 들고 있다. 여기에 범죄의 중대성이나 재범의 위험성, 피해자 및 중요 참고인 등에 대한 위해 우려 등을 고려하라고 설명한다. 검사나 판사의 주관적 판단이 철저히 배제될 수는 없겠지만 어디까지나 이 법 조항을 기준으로 한진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이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전히 “한진그룹 일가를 구속하라”는 구호는 계속되고 있다. ‘갑질’ 피해를 당한 대한항공 직원들뿐 아니라 법률을 공부했다는 인사들까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것처럼 구속은 처벌이 아니다. 수사와 재판을 하는 도중 이를 위해 꼭 필요한 경우에 거칠 수 있는 한 과정일 뿐이다.

한진 일가에 대한 처벌은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기각된 영장을 가지고 있는 기관들이나 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 등 별도의 범죄 혐의로 한진 일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곳들이 얼마나 관련 증언·증거를 보강하고 확보하느냐에 따라 법원에서 이를 고려한 판단이 나올 것이다. 영장이 기각됐다고 해서 한진 일가가 무죄라는 의미는 아니다.

문병주 사회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