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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 세포보다 10배 빠른 말라리아...매년 40만 목숨 앗아가

중앙일보

입력

사람의 피를 빨고 있는 모기. 이 과정을 통해 말라리아 원충이 피부에 침투하게 된다. [사진 하이델베르크대]

사람의 피를 빨고 있는 모기. 이 과정을 통해 말라리아 원충이 피부에 침투하게 된다. [사진 하이델베르크대]

매년 200만 명 이상의 환자가 발생하고 40만 명 이상을 사망으로 모는 질병. 바로 말라리아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감염병으로 말라리아를 꼽는다. WHO에 따르면 2015년 세계적으로 말리리아 환자는 214만 명으로 조사됐다. 이중 43만 8000여명이 사망했다. 환자의 88%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했지만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말라리아 감염자가 증가하고 있다.

말라리아는 얼룩날개모기(학명 Anopheles species)의 암컷에 의해 전파된다. 이 모기가 사람의 피를 빨면 피부에 말라리아 원충(plasmodium)에 들어가는데 이 과정을 통해 말라리아에 감염된다. 모기에 물린 뒤 오한ㆍ발열 등 감염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는 짧게는 2주 길게는 몇 개월간이 걸린다. 간에 자리 잡은 말라리아 원충은 적혈구를 파괴한다.

말라리아 원충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모습. [사진 하이델베르크대]

말라리아 원충을 현미경으로 확대한 모습. [사진 하이델베르크대]

말라리아는 세계적인 골칫거리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가 만든 빌&멀린다게이츠재단은 2000년부터 말라리아 퇴치약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말라리아 종말까지 먼 얘기다. 빌 게이츠는 지난해 마이크로소프트 주식 6400만주를 빌&멀린다게이츠재단에 기부했다. 이는 46억 달러(5조2200억원)에 이른다.

말라리아 감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은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과학자들 역시 관련 연구를 다양하게 진행하고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연구팀은 최근 말라리아 강력한 확산력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내놨다. 모기에서 의해 피부에 침투한 말라리아 원충이 인간의 몸속 면역 시스템보다 10배 이상 빠르다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대 연구팀은 말라리아 원충이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근육 세포를 생성하는데 관여하는 액틴(actin) 단백질에서 찾아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말라리아의 액틴은 레고를 쌓아올린 것과 같은 로프처럼 긴 모양을 가지고 있었다. 액틴은 인간의 몸속에도 존재하는데 말라리아는 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말라리아 원충이 피부를 파고들어 이동하는 모습(왼쪽)과 이 과정에서 원충이 활용하는 단백질의 구조(오른쪽). 인간 몸 속에 있는 단백질과 유사하다. [사진 하이델베르크대]

말라리아 원충이 피부를 파고들어 이동하는 모습(왼쪽)과 이 과정에서 원충이 활용하는 단백질의 구조(오른쪽). 인간 몸 속에 있는 단백질과 유사하다. [사진 하이델베르크대]

로스 더글러스 박사는 “말라리아 원충은 몸속 백혈구보다 10배 이상 빠르게 움직인다”며 “말라리아가 마지막 방벽인 면역 시스템을 손쉽게 뛰어넘기 때문에 빠르게 퍼진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실험을 통해 말라리아의 액틴을 포유류의 액틴으로 바꾼 것이다. 그러자 말라리아 원충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지 못했다. 로스 더글러스 박사는 “말라리아의 단백질을 포유류의 단백질로 교체하자 일부는 생존하지 못했고 일부는 이동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말라리아의 액틴 구조. 레고를 쌓아올린 것과 비슷하다. [사진 하이델베르크대]

말라리아의 액틴 구조. 레고를 쌓아올린 것과 비슷하다. [사진 하이델베르크대]

이는 말라리아 원충이 포유류의 면역 시스템을 뛰어넘기 위해 속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구 결과는 국제 저널인 플로스 바이올로지에 게재됐다.

하이델베르크 대는 이번 연구 결과가 말라리아 퇴치약 개발과 다른 기생충 연구로 퍼질 것으로 전망했다. 더글러스 박사는 수퍼 컴퓨터 등을 동원해 말라리아 액틴 형성 과정 등에 대한 추가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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